주왕산 내원마을은 전국에 모두 전기가 들어오는 가운데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했지만 국립공원 보존을 위한 철거계획에 의해 사라졌다. 한국사에서 6·25 전쟁은 실향민을 잉태했고,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도 이주민들이 발생하면서 정든 고향을 등져야 했다. 내원마을처럼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이방인 신세가 되는 설움도 있었다.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소설가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에서 제기하였다.
국립공원 내 마을은 오염원과 무허가 영업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철거하였다. 수몰 지역처럼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았고, 국립공원 지정 직후에는 개발 규제를 시작하였다가 관광객이 몰리면서 ‘계곡 오염’과 ‘무허가 영업’을 이유로 철거했다. 주왕산 내원마을은 대전사에서 주방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다가 용연폭포에서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나타나는 분지에 위치하며, 임진왜란을 피해 사람들이 살면서 지난 400여 년간 거주해 왔다고 전한다. 한 때 70여 가구 500여 명이 거주하였으나 1950년대 6·25 전쟁과 1970년대 정부의 소개 정책으로 인구가 줄었다. 주왕산이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전기 가설이 무산됐고, 그 결과 30년 가까이 ‘전기 없는 마을’이 됐으며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 1990년대 이후 오히려 탐방객을 불렀다.
[대전사와 기암] 내원마을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서면 대전사가 나타나고 그 뒤로 기암이 병풍처럼 서 있다.
[내원마을 초입의 계곡과 용연폭포] 깎아지를 듯한 암벽과 용소가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을 입구를 막아서고 있다.
그렇지만 관리사무소가 경관 훼손과 주방계곡 수질 악화, 사찰 주변 환경 개선을 명목으로 2001년 철거계획을 세웠고, 2004년 주민들의 영업을 무허가로 고발하고 1명이 구속됐다. 주민들의 장사는 무허가였지만, 공원 지정 이후 농사·벌목 같은 생업이 막힌 산골에서 탐방객 대상의 장사가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이에 주민들은 화장실 하나 없이 탐방객을 받게 한 관리 부실을 문제 삼았다. 보상이 끝난 2007년 11월에 마지막 남은 7가구가 철거되면서 마을도 지도에서 사라졌고, 관리사무소는 내원마을 터에 억새군락과 산수유, 싸리 등으로 숲을 조성하였다.
[사라진 주왕산 내원마을 터]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내원마을 터에 억새군락과 산수유, 싸리 등으로 숲을 조성하였다.
가장 최근에 사라진 지리산 심원마을도 1988년 성삼재 도로가 뚫린 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붐비다가 2006년 이주가 결정됐고, 2017년 건물 55동과 진입도로가 모두 철거된 뒤 자생 수목 4만 8천여 그루를 심었다. 반면 주왕산 안에도 너구마을처럼 지금까지 주민이 사는 국립공원 안 마을도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