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를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왜 어떤 봉우리는 뾰족하고 날카로운데, 어떤 봉우리는 탑처럼 뭉툭하게 솟아 있을까? 데이지(Leucanthemum vulgare)나 민들레는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지만 이쪽 사면엔 진분홍 로도덴드론(Rhododendron)이 뒤덮여 있고, 저쪽 절벽은 새하얀 에델바이스(Leontopodium alpinum)가 피어 있을까? 그 이유는 발밑에 깔린 암석 때문이다.
[만년설의 동서축 알프스와 남북축 알프스 돌로미티]
알프스는 하나의 산맥처럼 보이지만, 지질학적으로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맞붙어 있다. 동서를 가르는 산맥의 중심축인 몽블랑(Mont Blanc), 아르 마시프(The Aiguilles Rouges), 오스트리아의 호헤 타우에른(Hohe Tauern)은 헤르시니안 조산운동 시기(약 3억 년 전)에 형성된 화강암과 편마암의 기반암이다. 산성 토양으로 사면을 붉게 뒤덮는 알프스 로도덴드론(Rhododendron ferrugineum), 월귤나무(Vaccinium 속), 아르니카(Arnica montana)가 우점종을 이루는데 석회암 지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조합이다.
반면 이 결정암대를 남북으로 감싸는 인스부르크, 돌로미티, 블레드가 속한 줄리안 알프스는 약 2억 년 전 트라이아스기, 테티스해(Paratethys Sea)라는 열대 바다에 쌓인 석회암과 백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암석의 화학적 성질인 알칼리성과 산성이 그 위에 뿌리내리는 식물을 결정한다.
인스부르크 뒤편으로 솟은 노르트케테(Nordkette)는 트라이아스기 석회암이 두꺼운 층상 구조를 이루는 급경사 지대다. 석회질 절벽 틈새와 초지에 에델바이스, 석회암 용담(Gentiana clusii), 알프스 아네모네(Pulsatilla alpina), 색스프라가류(Saxifraga spp.) 등이 자란다.
인스부르크에서 남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돌로미티가 나온다. 돌로미티는 마그네슘이 치환된 백운석(돌로마이트)으로 이루어진 옛 산호초 지형이다. 석회암보다 더 특수한 화학 조성 때문에 알프스 전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석회암 특산식물 다양성을 보인다. 주요 식물은 티롤 앵초(Primula tyrolensis), 모레티아나 초롱꽃(Campanula morettiana), 에델바이스, 돌로미티 색스프라가 변종들 등이 자란다.
[돌로미티 고유종인 모레티아나 초롱꽃 관찰]
돌로미티를 지나 동쪽으로 더 나아가면 블레드(Bled)가 속한 줄리안 알프스에 닿는다. 이곳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의 원조 격으로, 발칸반도와 알프스 식물상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 때문에 다른 두 지역에는 없는 슬로베니아·발칸 고유종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조이스의 방울꽃(Campanula zoysii), 석회암 용담(Gentiana clusii), 에델바이스, 알프스 아네모네 등이 서식한다.
이렇게 세 지역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가지 구도가 드러난다. 에델바이스와 석회암 용담은 인스부르크·돌로미티·블레드 세 지역 모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범석회암 지표종’이다. 반면 티롤 앵초·모레티아나 초롱꽃은 돌로미티, 조이스의 방울꽃은 블레드에 서식하는 지역 특산종이다. 같은 석회암이라도 백운암화 정도, 침식사, 인접 식물구계에 따라 고유종의 분포가 달라진다.
샤모니에서 블레드까지 지형은 같은 옛 바다가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육지가 되어 온 기록 때문이다. 그 위에 뿌리내린 식물들은 에델바이스부터 각 지역의 고유종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발밑의 돌 하나, 눈앞의 꽃 한 송이가 오랜 기간 변해 온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길을 걷는 것은 풍경이 만들어진 시간을 함께 읽는 것이다.
[줄리안 알프스의 석회암 지대와 블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