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어쩌면 인류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소행성 충돌이나 태양의 팽창으로 지구는 끝나더라도, 선택된 소수의 사람은 우주선에 올라 다른 행성으로 떠나 살아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인류를 위한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할 거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도 그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주 어딘가 다른 행성에 살아남기보다는 지구에 남는 선택을 할 것이다.
지구는 단순한 행성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삶이 쌓인 공간이기에, 지구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도 나는 지구라는 행성의 일부로 남을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두려울 것이다. 모두가 떠난 뒤 멸망해 가는 지구에 남는다는 건 쉽게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기억들과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살아왔던 시간이 남아 있는 이곳을 끝까지 떠나고 싶지 않다. 살아남는다면 잠시 안도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내가 살아왔던 삶과 나 자신을 부정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도 평소처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싶다. 늦잠을 자고, 예정돼 있던 약속이나 일정을 그대로 보내면서 마지막까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오르면 연락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가능하다면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슬픔 속에만 있기보다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웃으면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텅 빈 도로를 달리고 싶다. 아무도 없는 도시를 지나며 차가운 바람을 맞고,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천천히 떠올리고 싶다. 바람소리와 흙냄새, 마지막 노을을 바라보며 자유로움을 느낄거다. 곧 모든 것이 끝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완전히 끝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마치 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평범한 내일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싶다.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가 다시 시작 될 것처럼 말이다. 찬란했던 문명의 끝에서도 결국 인간이 가장 사랑 했던 것은 익숙한 하늘과 땅이 아니였을까. 그래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구에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