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流通期限)은 주로 식품 따위의 상품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기한이다.
때문에 유통기한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인격체보단 상품에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사회는 인간이라는 인격체를 대상으로 학벌, 스펙 등 여러 가지 기준을 대입해 값어치, 즉 상품성을 평가하고 있다. 유통기한도 그중 하나에 해당한다.
중학교쯤에 정규 교육 과정으로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등으로 나누어지는 인간의 생애 주기를 배운다. 각 시기에는 기대되는 발달 과업이 있다. 그 중 20~30대, 즉 청년기의 발달 과업에는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여 직업을 얻고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사회가 정의한 교육을 받는 시기의 유통기한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통념적으로 통용되는 학생이라는 신분의 기한은 상술한 내용처럼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 기한의 틀에서 벗어나면 낙오되는 느낌, 뒤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대다수가 따라가는 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두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청소년기 때 부모님, 교사 등 외부의 뜻에 따라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되겠지’하고 막연히 입시 공부에 투자하다가 의지가 크게 꺾여 20대 초반 내내 공백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길었던 공백의 시간은 내가 소속된 사회 집단에서 큰 이질감을 준다. 통상 여자는 20대 초•중반, 남자는 20대 중•후반에 교육을 마치고 취업 준비기로 들어가는데,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입장에서 조급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한창 바쁘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직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놓여 있는 나는 마치 냉장고 안에 정리되지 않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제품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본디 학생(學生)이라 함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나이에 대한 제한은 없다. 실제로 뉴스 등 매체에서는 가끔 늦은 나이에 젊었을 때 못 배웠던 걸 배우기 위해 다시 공부하시는 어르신 분들이 보도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시장에서는 다르다. 학생들은 졸업하면 인적 자원이 될 것이고, 세상이 정한 학생의 유통기한이 지났을 때 시작했던 학생 신분은 어딜 가든 발목을 잡을 것이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대학 생활을 끝내고 취업 시장에 나서면 아마 늘 20대 초반의 공백기에 대한 해명을 하고 다녀야 할 거다. 유통기한이 지나서 생긴 배움의 뜻이 치워야 할 곰팡이가 돼 버린 거다. 하지만 나는 이겨 낼 거다. 사회가 정한 학생의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내 인생의 유통기한은 한참 남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