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나 자신에게 엄격했다. 다른 사람의 실수는 쉽게 이해하면서도 내 실수에는 좀처럼 관대하지 못했다. 잘한 일 열 가지보다 부족했던 점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았고, 이미 지나간 순간을 되짚으며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하고 후회했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지금의 나는 늘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일곱 살 때부터 연주해 온 가야금은 그런 나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냈다. 입시를 준비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소절은 될 때까지 반복했고, 만족스럽게 연주한 날에도 녹음기를 켰다. 직접 연주할 때는 들리지 않던 실수가 녹음 속에서는 선명하게 들렸다. 다른 연주자의 영상과 음원을 찾아 비교하고, 잠들기 전까지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연습으로 채우고도 머릿속에는 잘한 부분보다 아쉬운 소절이 맴돌았다. 끝없이 부족함을 찾아내는 일은 고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뜻밖의 능력도 얻었다. 자신의 연주를 한 발짝 떨어져 듣는 법이었다. 잘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실수를 발견하기도 했고, 부족하다고 여겼던 부분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나를 몰아붙이던 엄격함이 조금씩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되어갔다.
그 시선은 훗날 연주뿐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을 향하기 시작했다. 예중, 예고에 다니며 오랫동안 가야금과 함께했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나는 앞으로도 이 길을 걷고 싶은가.’ 그동안 쏟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쉽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래 걸어왔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가야금을 내려놓고 새로운 전공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누구보다 완벽하게 연주하고 싶어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던 습관이, 결국 연주를 멈출 용기까지 줬으니 말이다. 부족한 소절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처럼, 달라진 마음도 외면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인다. 그렇기에 이 성격을 온전한 장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부족한 점을 끝없이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받아들이며 언제 방향을 바꿔야 하는지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한때 나는 완벽한 연주를 위해 같은 소절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제는 완벽한 답을 찾기보다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려 한다. 어쩌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엄격함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완벽해지는 방법이 아니라 때로는 완벽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