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멘토 김동준 대표님
심사대의 차가운 시선, 그리고 하나의 질문
필자는 정부지원사업 심사위원으로 매년 2,000건이 넘는 사업계획을 본다. 매번 심사대에 앉을 때마다 마주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에 대해서 필자가 던지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단 하나다. “이 팀이 해결하려는 것은 시장의 문제인가 아니면 창업자의 문제인가?”
많은 이들이 정부지원사업 선정을 목표로 화려한 문구와 거창한 기술을 나열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눈을 속이기는 어렵다. 심사 과정에서 가장 엄격하게 검증하는 축은 바로 PSST 사업계획 프레임워크의 두 기둥인 ‘문제 인식(Problem)’에서의 사전 준비 상태와 이를 뒷받침하는 ‘팀(Team)’의 연관성이다. 어떠한 스토리가 있어야 냉혹한 창업 전장에서 끝까지 생존할 수 있는지, 그 차가운 현실과 선명한 해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갈림길 - 지향점의 차이
창업 생태계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다. 바로 ‘돈을 버는 행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다. 프로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Unmet Needs)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시장의 공감(매출)을 인정받는다. 그렇기에 프로의 시선은 ‘시장’에 있다. 반면, 아마추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고, ‘본인’에 초점을 둔다. 여기에는 ‘이걸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추측도 포함된다. 매슬로우(Maslow)의 ‘자아실현욕구’와 ‘인정욕구’를 사업을 통해 충족하려는 활동이다.
냉정하게 말해, 돈을 벌지 못하는 아이디어는 사업이 아니라 ‘자기만족형 취미’에 가깝다. 이러한 아마추어적 창업은 단순히 나이나 경험의 부족을 떠나서, 수많은 특허를 보유한 기술 창업자, 대기업 사내벤처, 대학 및 공공 연구소 창업 등 소위 ‘스펙이 화려한 전장’에서도 숱하게 관찰된다.
문제 인식(Problem) - 객관적 조사를 통한 불편함의 입증
그렇다면 프로 창업가가 되기 위해 ‘문제 인식’ 단계에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대다수 탈락하는 계획서들은 대표자 개인의 단편적인 경험이나 몇 줄의 뉴스 기사만으로 시장의 문제를 성급하게 단정 짓는다. 심사위원은 결코 대표자의 주관적인 ‘주장’에 점수를 주지 않는다. 시장이 겪는 어려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해내기 위해 창업자는 설문조사, 표적집단면접(FGI), 관찰조사, 동행조사 등을 치열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것이 ‘창업자의 견해’가 아니라 ‘객관적인 시장의 목소리’임을 전달해야 심사위원, 나아가 소비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는 다음 단계인 실현 가능성(Solution)에서 제시하는 사전 준비작업과 사후 진행계획을 설득력 있게 정당화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팀(Team) - 아이템과 창업자 서사의 완벽한 싱크로율
정부지원사업 심사에서 ‘팀’ 항목을 평가할 때, 심사위원들이 집중해서 보는 지표는 화려한 간판이 아니다. 바로 ‘대표자의 전공, 경력, 자격 측면에서 사업 아이템과의 연관성’이다. 아이템과 문제는 철저하게 ‘목적을 염두에 둔 진로 설계’와 궤를 같이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시총 2조 원 상장사를 일궈낸 창업가 L의 여정
필자의 오랜 지인인 L은 중학교 시절까지 배구선수로 활동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운동을 내려놓아야 했다. 낙담하는 대신 고등학교 때부터 학업에 매진하여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그는 인생의 목적을 ‘사업’에 두고, 가장 혹독하다는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병원과 약국을 발로 뛰며 그는 현장의 명확한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포착해내고야 말았고, 본인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이 됐을 때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현재는 시가총액 2조 원에 달하는 대형 상장사를 일궈냈다.
L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직장을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한 기회로 활용했고 그 과정에서 관련 네트워크를 확보했기에 실행력을 갖출 수 있었다. 동료든 거래처든 간에, 자신의 사업처럼 직무에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다음 스텝(창업)을 기대하며 생산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사회생활에서 맺어진 진정성 있는 네트워크들이, 훗날 창업 전선에 나섰을 때 대표의 아이템을 함께 수행해 줄 든든한 인프라가 된다.
당신의 나침반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매년 수천 개의 아이디어를 만나며 필자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성공하는 창업가는 사업계획서를 쓰기 전부터 이미 ‘프로의 눈’으로 시장을 관찰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아이템과 단단하게 연결해둔다. 따라서 만약 지금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반드시 스스로 확인해봐야 한다. 당신이 증명하려는 불편함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진짜 시장의 소리인가? 그 문제 해결을 시작하기 위해, 지금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면 ‘자기만족’이라는 개인적 결과를 얻을 뿐이다. 하지만 시장의 결핍을 해소하면 ‘시장만족’, 즉 수익과 성장이라는 비즈니스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내가 잘하는 것 중심의 아마추어적 설계를 과감히 버리고, 시장의 결핍을 채우려는 프로의 설계를 시작하라. 목적을 가진 대표자의 서사와 정교한 사전 준비만이 500대 1의 치열한 심사대를 당당히 통과해 내고, 나아가 2조 원 가치의 시장을 개척하는 위대한 도전의 서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