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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처음이라-홍양화 학우(물리치료과 2)

등록일 2018년05월24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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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동생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진로에 대해 결정을 하려고 하는데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한다. 나는 대학을 한 번 졸업하고 다시 신구대에 들어왔다. 하고 싶은 게 새로 생겨서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어린 동기들이 이것저것 물어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학과가 나랑 안 맞는데 어떡해야 해요?’ 이런 질문을 해주는 게 고맙기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든다. 간단히 답 나오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래를 듣다가 작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하나를 알게 됐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제목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다들 처음 사는 삶인데 뭐가 이리 어렵고 복잡한지 모르겠다.

우리는 좋아하고 싶은 것을 좋아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어릴 적 엄마한테 저는 세상 최고의 청소부가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먹는 거 말곤 그다지 좋아하는 게 없을 때였는데 청소하면서 방을 깨끗이 하는 게 재밌었나 보다. 이 말을 했을 때 당황해하는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TV나 책에선 우리가 즐길 수 있는걸 찾아야 한다고 한다. 스무 살 성인이 될 때까지 수학, 영어 말고는 다른 걸 좋아하는 게 허락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우리가 이 속에서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N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처음 시작은 3포 세대였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말한다. 그다음 앞에 세 가지에 내 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 거기에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가 생겨났다. 그러다 포기해야 할 게 계속 늘어나니까 결국 N포 세대라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내가 속해있는 현세대가 포기만 하는 세대인 거 같아 속상하다. 아니, 포기에 집중하는 세대인거 같아서 속상하다. “시간 없어서 못 만난다고 말해야 될까 봐 친구들에게 연락 오는 게 무서울 때가 몇 번 있었다. 가장 최근 여행을 떠났던 게 2년 전 일정도로 여유 없이 살고 있지만, 누가 나한테 요새 뭐 하고 지내냐?”고 물으면 절대 인간관계와 여유를 포기하면서 산다고 하지 않는다.

분명 무언가를 위해 이것저것 포기하면서 살고 있는데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분명하지 않을 때, 포기한 것들만 눈에 들어온다. 남들이 정해준 정류장만 거치다 보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혼란스럽고, 앞은 보이지 않으니 뒤에 남겨둔 포기한 연애’, ‘포기한 인간관계’, ‘포기한 꿈들만 보인다.

인생은 유명대학 입학, 대기업 입사, 남들 다 하는 시기에 결혼해서 자식들 낳고 키우기 같은, 종이 위에 찍어 놓은 큰 점 몇 개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점과 점 사이의 수많은 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순간, 그걸 위해 시도하는 순간, 그 결과들로 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순간, 이 순간들이 모여서 만든 하나의 선이 인생이다. 그래서 점의 방향이 중요하고, 점들을 찍는 행위, 즉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인생길 뒤에 찍힌 점들이 아니라 다음 어디에 점을 찍을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나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말해준 누구에게.

사실 해주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그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뻔한 말들을 꼰대처럼 쭉 써 놨다. 너 하고픈 거 하면서 살아라.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겠지만, 아닐걸? ‘야 미쳤어? 네가 이걸 해도 돼?’라고 머릿속에서 억눌러 왔던 그거, 그거 한 번 해봐. 해봐야 안다. 진짜 겪어봐야 안다. 안 해보고 고민만 하다간 남이 하라는 거만하게 된다. 인생 처음 사는 건데 누군들 실수 안 하냐. 한 번뿐인 인생이야! 라면서 발목 잡는 사람이 있을 텐데, 맞아, 그 사람도 실수 겁나게 하면서 살고 있어.

대신 날아갈 정도로 가볍진 않게 그러면서 가라앉을 정도로 무겁진 않게.

남에게 휩쓸리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지만, 눈앞이 가려질 정도로 거만하진 않게.

실수들을 발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여기되 그 돌들 버리지 말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만드는데 쓰길.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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