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정문 앞 사거리는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어서, 정문을 중심으로 늘 각종 현수막이 내걸린다. 개인과 단체가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속하지만, 거기에도 지켜야 할 규칙과 예절이 있다. 정치적 표현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치적 메시지는 그것을 보는 사람과 그것이 놓이는 장소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 정문 앞을 메운 정치 현수막에서 그런 배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문은 배움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입구이자 대학의 얼굴이다. 그 앞을 정치 구호로 뒤덮는 것은 교육 공간에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성과, 방해받지 않고 공부할 학생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기는 일이다. 이런 게시가 되풀이되면 대학의 교육적 기능보다 자기 주장만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학생뿐 아니라 이 길을 지나는 지역 주민들도 이를 설득이 아닌 일방적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배려 없는 주장은 결국 주장하는 쪽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는다.
우리 대학은 개교 이래 학생 자치활동을 중시하고 다양한 학생 활동을 지원하고 장려해 왔다.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을 존중하면서도, 반세기 동안 교권과 학습권을 지키는 일을 가장 앞에 두었다. 특정 정파의 일방적 요구에는 흔들리지 않았고, 면학 분위기 조성과 교육 혁신에 힘써 왔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온 대학이기에, 그 자유가 교육 환경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지금 이에 대하여 우리의 의견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정치적 표현과 교육 공간은 구분되어야 한다. 대학 앞에서는 면학 분위기가 우선이고, 교육 공간의 정치적 중립은 지켜야 한다. 정문 바로 앞의 정치 현수막은 설령 법적으로 허용되더라도, 미래 세대를 기르는 교육의 관점에서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각 정당과 정치인은 최소한 대학 정문 앞만큼은 현수막을 내걸지 말아야 하며, 관할 지자체도 교육 시설 주변의 게시 기준을 마련하는 데 함께 나서 주어야 한다.
현수막의 개수가 아니라 배움의 공간을 존중하는 태도가 정치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우리의 미래는 인재를 어떻게 길러 내느냐에 달려 있고, 그 인재를 기르는 대학은 언제나 배움에 가장 좋은 환경을 지켜 낼 수 있어야 한다. 지역 발전을 위해 인재를 육성해 온 우리 대학의 정신과 전통은 존중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