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명시돼 있는 방공호의 정의는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됐으며 여러 상황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 및 차단하기 위해 만든 엄폐된 장소를 뜻한다. 여기서 내가 정의한 방공호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방공호는 무엇일까? 글쓰기를 떠나서 나에게 진정으로 방공호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깊은 생각을 통해 나의 공간적 방공호는 버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왜 하필 많은 사람이 공용으로 이용하는 버스인지 되물을 수 있지만, 나에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중요한 고민의 답은 거의 버스에서 결론 내렸고 버스는 나에게 여러 생각과 의문을 던져줬다. 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모두 목적지가 있다. 만약 목적지가 없다면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바보처럼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는 버스가 삶의 방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미래처럼 가까운 정거장을 찾고 도착하기 전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것. 내리기 위해 벗었던 외투를 입고 버스 카드를 찍는 행동이 미래를 준비하는 나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갈 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 나의 방공호가 될 이유는 충분하다.
나에게는 또 다른 방공호가 존재하는데 그걸 깨달은 건 그리 멀지 않은 최근의 일이었다. 나는 과제를 하기 위해 집 주변 카페를 갔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험악하고 고됐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며 앞머리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고개를 땅에 박고 걸었다. 그게 익숙해진 탓일까? 눈치 없는 어깨는 주저앉았고 등도 살짝 굽어 낡은 지팡이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진 인체 균형에 자신을 탓하며 카페에 도착했다. 과제를 끝낸 후 한동안 생각하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혀 혼자 고민을 하던 중 친구의 얼굴을 보자 편안함이 밀려 들어왔다. 그때 나는 의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힘들어서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조금은 거칠어도 나름 부드럽게 바로잡아준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두 번째 방공호는 나를 웃게 해주는 친구이다.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깊은 고민과 생각들의 화살은 그 친구 옆에 있으면 모두 튕겨 나갔고 우울하거나 힘든 일들은 위로와 응원으로 바뀌었다. 친구의 말들은 사탕발린 달콤한 말들보다 현실적이고 차가운 말들이었지만 그 말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멘트 같은 역할을 했다. 그만큼 그 친구의 행동과 말들은 방공호의 조건을 채워줬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공간과 사람들 속에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어디를 가나 항상 내 주변에서 나를 괴롭힌다. 누군가는 이겨내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아픔과 실수를 숨기며 살아간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이 문제의 해결책은 이 글의 주제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나의 방공호를 만드는 것이다.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공간 말이다. 그곳에서 또는 그 사람 곁에서 나의 아픔과 실수 그리고 행복과 사랑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자신의 방공호를 만들 수 있다면 잠시 쉬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