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전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쓸까 말까 수없이 망설였지만, 이제는 마음속에 묻어두기보단 그냥 털어놓고 잊고 싶다. 고등학교 2학년, 나는 남고에 다녔다. 매년 가을이면 ‘단풍제’라는 축제가 열렸는데, 장기자랑과 외부 여고 댄스부·보컬부의 공연이 함께 진행되는 행사였다. 당시 나는 전교 부회장을 맡았기 때문에 늘 학생회실에서 분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원들이 “우리도 장기자랑 나가자”라고 제안했고, 참가자를 정하기 위해 전원이 가위바위보를 했다. 결과는, 당첨. 나 포함 네 명이 출전하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수하게 ‘춤’만 출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 밖이었다. “그냥 하는 김에 여장도 하자.” 누군가 던진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급변했고, 남고 특유의 ‘의리’ 분위기 속에서 나는 반쯤 체념한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 단톡방에는 각종 여장 아이템과 섹시 댄스 영상이 하루 종일 올라왔다. 결국 추기로 한 곡은 씨스타 ‘나혼자’, 선미 ‘24시간’, 현아 ‘빨개요’, EXID ‘위아래’, 걸스데이 ‘Something’. 의상은 빨간 원피스, 검은 스타킹, 긴 웨이브 가발, 그리고 빨간 구두였다. 행사 7일 전부터는 안무 연습을 했고 학교 끝나면 학생회실에서 춤추고, 집에서도 혼자 거울 앞에서 웨이브 연습을 했다. 무릎을 꿇고 바닥을 쓸고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진짜 내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드디어 공연 당일, 새벽같이 빨간 구두를 몰래 가방에 넣고 등교했다. 여고생 친구들에게 부탁해 받은 풀 메이크업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얀 얼굴에 볼터치, 속눈썹, 반짝이 섀도우, 빨간 틴트까지. 그리곤 화장실에서 빨간 원피스와 스타킹, 가발까지 착용하고 급하게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폭소가 터졌다. 담임 선생님도 나를 보시곤 고개를 못 들고 웃고 계셨고, 식당 아주머니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자, 여장한 내가 남자 화장실에 나타나 충격받은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무대. 조명이 나를 비추고, 음악이 시작됐다. 첫 곡은 씨스타의 ‘나혼자’ 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고개를 꺾고 의자를 잡고 웨이브를 하고 한쪽 다리로 바닥을 쓰는 안무였다. 관객석에서 탄성과 비명이 동시에 쏟아졌고 센터였던 나는 마지막 단독 안무까지 소화해야 했다. ‘24시간’에서는 바닥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천천히 일어났고, ‘빨개요’에서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쓰는 동작에서 원피스가 올라가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 관객들 반응은 초토화였다. ‘위아래’에선 빨간 구두를 신고 웨이브를 추다가, 내 가발이 벗겨져 얼굴이 드러났고 찍힌 영상이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두렵다. ‘Something’에서는 원피스 끈이 흘러내리며 옷이 벗겨질 뻔했다. 정신줄을 붙잡으며 겨우 마무리했고, 결과는 장기자랑 1등. 상금 30만 원을 받았다. 무대 뒤로 튀어나와 교실로 가는 길에 주변에서 나를 보고 “씨스타!”, “민효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뛰어가 옷과 가발을 벗어 던졌다. 화장실 거울 앞, 검은 마스카라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집에 갔더니, 부모님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셨다. 난 혼자 화장을 지우며 침대에 누워 몸살을 앓았다. 며칠 뒤, 학교에서 내 별명은 ‘민효린’이 됐고, 그때 영상은 아직도 돌고 있을 거다. 지금도 생각하면 깊은 현타가 몰려오는 내 인생 최악의 흑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