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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사가 바라본 신구대학교와 신구문화사-김중현 교사(덕소고등학교)

등록일 2025년11월06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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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소고교 김중현 선생님
기온이 뚝 떨어지니 가을은 겨울처럼 흉내 냅니다. 학생들이 오가는 등굣길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수능이 빠르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고3 학생들은 지난주에 치른 학교 시험을 뒤로하고 교실에서 다시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예체능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좀 일찍 학교에서 빠져나가고, 면접이 있는 친구들은 모의 면접으로 선생님들의 질문에 준비한 말을 논리적으로 자신감 있게 토해내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고즈넉한 3학년 교실 풍경입니다.

 

저는 2학기가 되면 고3 담임으로서 이런 친구들과 수시를 위해 진학 상담을 합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대학 가운데, ‘직업교육의 최고 브랜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신구대학교의 학과 및 전공 안내, 신입생 모집 안내 홍보 책자를 보여주면서 보건의료, 산업디자인, 정보미디어, 비즈니스실무 등의 모집 단위를 추천했습니다.

 

제가 해마다 신구대학교를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어느 대학교보다 보기 좋고 이해하기 쉽게 편집하며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디자인한 책자 속에서 대학교의 성의, 꼼꼼함, 그리고 치열함이 듬뿍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요새 학생들은 멀리 있는 지역의 대학교보다 수도권 대학교를 많이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이름 있는 수도권 4년제 대학교에 갈 만한 성적이 되지 않는 친구들은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자신이 희망하는 학과가 있는 전문대학교를 찾습니다. 신구대학교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학과가 많으며, 우리 지역에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안성맞춤 대학교입니다.

 

신구문화사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전국의 많은 대학교에서 홍보 차원으로 보낸 입시 책자를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가지런히 정리하곤 합니다. 그런데 일반 책도 보내는 유일무이한 대학교가 바로 신구대학교입니다. 신구문화사라는 출판사를 대학 졸업 이후 오랜만에 접하니 반가웠습니다. 다양한 서적으로 가득한 교실 책꽂이에 『봄·여름·가을에 피는 우리 꽃 1,108종』을 소개한 책 한 질과 단행본 『이야기가 있는 굿모닝 텃밭』이 보란듯이 꽂혀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소나무, 은행나무, 살구나무, 느티나무, 호두나무, 감나무, 박태기나무, 라일락, 명자나무, 철쭉, 진달래, 목련화, 튤립, 장미, 능소화 등 식물이 계절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옷을 입고 뽐냅니다. 모르는 식물을 만나면 위의 책에서 어떤 식물이며 특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생태적 감수성을 기르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소중한 기회가 됨으로써 저 자신이 한 뼘씩 성장하는 듯했습니다.

 

70년 넘게 끊임없이 독자의 사랑을 먹고 자라고 있는 신구문화사를 더욱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평론가 염무웅 선생님의 책 『살아있는 과거』, 『문학과의 동행』,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과 ‘염무웅 등단 6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통해서입니다. 신구문화사에서 한동안 일한 염무웅 선생님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는 책과 학술대회 자료집에는 신구문화사가 어떤 존재였는지가 자세하게 나와 있었습니다. 원로 평론가 염무웅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분석하고 사색을 담아 ‘민족 및 민중문학’과 ‘리얼리즘’을 이야기하는 실천적 지식인입니다.

 

신구문화사는 『세계 전후 문학전집』, 『현대 한국 문학전집』, 『세계의 인간상』, 『한국의 인간상』, 『노오벨상문학전집』, 『현대 세계 문학전집』, 『한용운 전집』 등 잇달아 전집을 펴냈습니다. 특히 1965년 11월부터 1967년 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18권이 간행된 『현대 한국 문학전집』에는 오영수, 손창섭, 장용학, 전광용, 이범선, 오상원, 서기원, 이호철, 차범석, 최일남, 박경리, 남정현, 최인훈, 김승옥, 김수영, 신동엽, 김춘수, 황동규 등 100여 작가들의 주요 작품과 작가론 및 작품론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지난날의 국어 시간에 만났고 공부한 작가들입니다. 이 전집은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리며 쓰러졌던 4·19 혁명의 현장에 몸을 던진 대표적인 시인인 신동문과 염무웅의 합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신구문화사는 국문학자들과 교류하며 국어국문학 학회지를 발간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개론』(백철), 『국문학전사』(이병기, 백철), 『국문학통론』(장덕순), 『국문학산고』(정병욱), 『한글맞춤법통일안강의』(이희승) 등 국문학도라면 누구나 아는 학술서를 출판하여 학술적 전문성을 갖춘 출판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중 독자를 고려하는 출판 기획도 병행했는데, 이는 ‘독자에게 읽히는 책,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출판사 설립자의 창업정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눈여겨본 대목은 신구문화사가 전후세대와 60년대 세대들과 함께 협업하던 현장이어서, 신구문화사를 그 당시 ‘지식인의 살롱’이라고 불렀다는 점입니다. 여러 문인이 세대와 경향을 넘어 이곳을 넘나들며 자연스러운 연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1974년 11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결성으로 이어지는 바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작가회의’의 모태가 되었다면 과한 주관적 생각일까요? 이 단체는 이 두 세대가 합쳐진 연합의 성격을 띠며,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이 땅의 민주화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일관성 있게 싸워온 한국문학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창비’가 창간 초기에 신구문화사의 방 한 귀퉁이를 빌려 제작·배포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신구문화사의 인적·물적 자원을 이어받아 출발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신구문화사가 없었다면 한국 문학계의 두 축으로 손꼽히는 ‘창비’의 훌륭한 성과도 없었을 겁니다. 또한 1960년대 초에 출판된 열 권짜리 『세계 전후 문학전집』은 그 시대의 문학청년이라면 누구나 한두 권쯤 읽었고, 특히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막중한 영향을 끼친 선물과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이처럼 신구문화사의 출판은 ‘단절’의 역사가 아니라 ‘연속’의 역사이며, 한강 작가가 말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 아닐까요. 신구대학교가 더 나은,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인공지능, 기후 변화, 초고령 사회, 불평등 등 거대한 격랑의 시대에 언제나 지남차(指南車)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신구문화사는 앞으로도 설립자의 뜻을 계승하고 혁신하여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 오래도록 우뚝 서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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