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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특집] 볼펜으로 테이프를 감던 시절... 손끝에 남은 아날로그의 온도

등록일 2026년06월19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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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로 달려가고, 카세트테이프를 꾹꾹 눌러 감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하던 시절. CD 플레이어를 소중히 품에 안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우리 손안의 세상이 이토록 작아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계들이 곁을 스쳐 지나갔을까. 전자기기의 변천사를 따라 추억 속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삐삐가 울리면 뛰어

1990년대, 허리춤에 찬 작은 기계 ‘삐삐’가 울리면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로 달려가야 했다. 숫자로 마음을 전하던 시절, ‘1004’는 ‘천사’, ‘8282’는 ‘빨리빨리’, ‘486’은 ‘사랑해’를 뜻했다. 지금보다 단순했지만, 오히려 더 창의적인 언어였다.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 했던 그 시절, 연락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능동적인 행위였다. 누가 남긴 숫자인지 확인하기 전까지의 짧은 긴장감도 그 시절만의 설렘이었다. 삐삐는 단순한 연락 수단이 아닌 사람들의 추억과 기다림, 설렘이 함께 담긴 하나의 문화였고, 숫자 몇 개만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아날로그 감성의 상징이었다.

 


 

테이프를 감던 손끝

삐삐가 연락을 맡았다면, 음악은 워크맨과 CD 플레이어의 몫이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면 볼펜으로 돌려 감고, A면이 끝나면 테이프를 뒤집고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직접 녹음한 테이프를 건네는 건 그 시절 최고의 고백이었다. 수록곡 목록을 손으로 눌러 쓰던 정성은 지금의 플레이리스트 링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였다. CD 플레이어는 더 선명한 음질로 등장했지만, 조금만 흔들려도 음악이 뚝 끊겼다. 음악이 튀지 않도록 숨을 참으며 걷던 기억, 그 소리를 온몸으로 지키던 시절. 이후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며 수천 곡을 손바닥에 담는 시대가 열렸다. 음악 한 곡을 듣기 위해 들이던 작은 수고가 오히려 노래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

 

주머니 속 작은 생명들

달걀 모양 키홀더 안의 다마고치는 밥도 줘야 하고 똥도 치워줘야 했다. 밥 주는 걸 깜빡해 죽어버린 다마고치 앞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던 기억, 그 픽셀 덩어리에게 정을 붙이던 순수함. 어쩌면 ‘어린 왕자’의 여우가 말한 길들여짐도 이런 감정이었을지 모른다. 닌텐도 DS로 쉬는 시간마다 친구와 통신 대전을 하고, PMP로 긴 버스 여행에 영화를 챙기던 시절. 이어폰을 나눠 꽂고 나란히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 안에는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은 기기 하나에도 추억과 우정이 담겨 있었기에, 그 시절의 전자기기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우리의 소중한 친구였다.

 


스마트폰, 우리가 잃고 얻은것

그리고 결국,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렸다. 삐삐도, 워크맨도, 닌텐도도 모두 그 안으로 흡수됐다. 편리함은 얻었지만, 테이프를 감던 손끝의 감각과 삐삐 숫자를 확인하러 달려가던 설렘은 사라졌다.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 속에는 분명한 온도가 있었다. ‘어린 왕자’의 여우는 말했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기다림은 불편함이 아니라 설렘의 시간이었고, 약속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관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오래된 기계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던 기다림의 온도일 것이다. 모든 것이 즉각 연결되는 지금, 오히려 ‘진짜 연결’은 더 어려워진 것은 아닐까. 복고는 단순한 추억 여행이 아니다. 우리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기계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관계와 정서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훈희 수습기자 wsjdkswpffk@g.shin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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