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전통은 저마다의 오랜 역사 속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거친 대자연에 경배를 드리거나 조상에게 정성을 바치며, 이웃과 함께 평화와 풍요를 염원한다. 지구촌 곳곳의 서로 다른 풍습 속에 담긴 따뜻하고 숭고한 의미들을 함께 만나 보자.
수확에 감사하고 조상님께 안녕을 비는 날, 우리나라의 추석
우리나라의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을 일컫는 말로, 8월의 한가운데 있는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연중 으뜸가는 보름 명절이다. 추석은 그동안 농사를 잘되도록 해준 것에 감사하는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이자, 한 해 농사의 마무리를 하고 이듬해의 풍농을 기리는 시기로서 의미가 있다.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으로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송편이 있다. 송편은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한 뒤 깨, 밤, 콩 등의 소를 넣고 모양을 빚어 만든 떡으로, 솔잎을 켜켜이 깔고 쪄내기 때문에 송편(松餠)이라 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게 된 배경에는 농경사회였던 옛날, 달의 변화에 따라 농사 시기를 예측했기에,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고자 달의 모양을 본떠 송편을 빚었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추석에 그해 갓 나온 곡식으로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며 한 해의 풍요에 감사드리고, 조상의 묘를 찾아 인사를 드리며 성묘를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추석은 한 해 동안 살펴주신 조상께 감사드리고,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누며 따뜻한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뜻깊은 명절이다.
땅을 향해 열정을 바치는 날, 볼리비아의 팅쿠
볼리비아 안데스 고원 지역인 포토시(Potosí)에서 유래한 팅쿠(Tinku)는 매년 5월경에 열리는 케추아족의 전통 명절로, 케추아어로 ‘만남’ 또는 ‘대면’을 의미한다. 팅쿠에서 가장 독특한 풍습은 마을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며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의식이다.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남성들은 주먹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 손에 돌을 들거나 상대방을 향해 돌을 던지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피를 흘리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싸움이나 힘겨루기가 아니라, 볼리비아 토착 신앙에서 비롯된 신성한 의식이다. 이 싸움은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Pachamama)를 찬양하는 것으로, 의식 중 흘리는 피는 땅의 풍요로운 수확과 다산을 기원으로 여겨진다. 즉,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땅에 정성을 바치기 위한 숭고한 절차인 것이다. 겨루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화해한다. 다퉜던 상대와 손을 잡으며 ‘우리는 다툰 적이 없는 것처럼 다시 하나의 마을, 하나의 이웃으로 돌아간다’고 다짐한다. 이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하는 것이 명절의 목적 중 하나다. 의식을 마친 후 밤이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손을 잡고 큰 원을 그리며 발을 땅에 힘차게 디디는 춤을 추는데, 이는 땅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며 명절을 마무리하는 행위다. 오늘날에는 실제로 싸움을 하기보다, 각자 대형을 갖추어 주먹을 휘두르거나 웅크려 원을 그리는 등 싸움을 연상시키는 ‘팅쿠 춤'을 추며 의식을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볼리비아의 팅쿠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대지에 고마움을 전하고, 치열한 의식을 통해 이웃 간의 화합을 만드는 열정적인 명절이다.
아름다움으로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는 날, 니제르의 게레웰
서아프리카 내륙국 니제르의 게레웰(Gerewol)은 매년 우기가 끝나는 9월과 10월 사이에 열리며, 사하라 사막 인근의 우다베 지역에 살고 있는 니제르의 부족 중 하나인 보로로(Wodaabe) 부족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게레웰의 가장 큰 특징은 젊은 남성들이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미고 춤을 추어 여성들에게 평가받는다는 점이다. 이 명절의 주요 풍습인 ‘야케(Yaake)’라는 춤 대회에서 남성들은 긴 흰색 의상을 입고 얼굴에 화장을 한 채 춤을 춘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오랜 시간 춤을 버텨내며 자신의 체력과 인내심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이어 남성의 키와 미모를 겨루는 ‘고레고제(Gore Geere)’ 경연이 열린다. 남성들은 곡식의 풍요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강인함을 뜻하는 검은색 물감으로 얼굴을 칠하고, 화려한 장신구와 땋은 머리로 장식한 뒤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여성 심사위원단 앞에 선다. 이때 키가 크고 눈이 맑으며 춤사위가 씩씩하고 아름다울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여기서 가장 아름답다고 뽑힌 남성은 그 해 ‘이 마을에 아름다움과 풍요, 평화를 불러올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 단순히 외모가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씩씩하여 앞으로 부족을 잘 이끌고 훌륭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니제르의 게레웰은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과 건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부족의 번영과 평화를 소망하는 유쾌한 명절이다. 이처럼 표현 방식과 풍습은 서로 다르지만, 세계의 여러 명절 속에는 자연과 조상에 대한 감사, 그리고 이웃과 함께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인류 공통의 바람이 담겨 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명절의 의미를 되새길 때, 우리의 삶은 한층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권나영 기자 2026112067g.shingu.ac.kr@g.shin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