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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사랑과 자유 그리고 무거움,「농담」

등록일 2016년09월06일 12시13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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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밀란 쿤데라
19482, 2차 세계대전 후, 소련 옆 동유럽의 한 나라에서 독일 나치에 반하는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은 성공으로 끝나 공산당 내각이 설립되고 소련 사회주의가 들어선다. 20세기 초 형성된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단일 국가 체코슬로바키아로 된 역사적 사실이다.농담의 저자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으로 이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196730대 중반의 나이에 이 책을 출간했다.농담은 공산주의 체제를 배경으로 보통 젊은이의 생활을 통해 그때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재 아흔을 바라보는 그는 책을 펴내며 내게 있어 역사적 상황은 나를 매혹시키는 실존의 주제를 극도로 날카로운 빛으로 새롭게 내리쬘 때만이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그를 매혹하는 것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사와 인간의 관계, 복수와 망각, 본래 행위의 소외, 사랑이라고 말한다.

 

결말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여러 책을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에, 소재마다 다르게 등장하는 인물에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 농담이 그 중 하나다. 4명의 화자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시점은 15년 전과 후, 그 세월에 걸쳐있다. 첫 장은 첫 번째 화자이자 주인공인 루트비크부터 시작한다. 15년 만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두 친구 코스트카와 야로슬라프를 만나고 두 명의 옛 애인 헬레나와 루치에를 마주친다. 이어지는 내용은 차례마다 화자가 바뀌며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15년이 지난 긴 인연의 끝자락에서 농담이 시작되는 셈이다. 화자는 루트비크에서 헬레나로, 다시 자신으로, 이어서 야로슬라프로, 코스트카로 바뀌며 총 500페이지를 채웠다.

 

사랑과 농담에서부터 시작된 비극

루트비크 회상은 과거 학창시절 때부터 시작된다. 당시 루트비크는 당의 일원이었다. 그 속에서 한 여자, 마르케타를 사랑했다. 그를 포함한 여러 남학생들이 그녀를 좋아했고 차지해보려 시도한다. 여기서 루트비크는 농담을 섞어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데 이로써 루트비크의 비극이 시작된다.

나는 마르케타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는데 모든 시대의 스무 살짜리 남자들과 똑같이 바보 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제압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는 척,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척. (중략) 농담이 그런 거리를 분명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방학을 맞아 마르케타가 떠나자 루트비크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데 농담조를 섞어 체제에 반하는 내용을 담는다. 이것은 당국 검열에 걸려 당원(친구)들에 의해 그는 학교에서 추방당한다.

이 비극을 시작으로 헬레나, 야로슬라프, 코스트카가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중심에는 루트비크가 있고 그들은 친구로서, 성직자로서, 여자로서, 혹은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그의 과거를 비춘다. 중간에는 그 스스로 옛날을 조명한다. 독자 입장에서 모든 내용을 한 번에 따라가기는 어렵지만 쿤데라의 문체는 등장인물을 제각기 살아있게 만든다. 생동감 넘치게 사랑과 증오, 죄와 용서 그리고 체제와 자유를 표현한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농담의 의미

상반된 의미지만 종이 한 장 차이와 같은 게 진실과 거짓이다. 한 치의 거짓말이 섞인 진실이 거짓으로, 완벽한 거짓말이 진실이 된다. 이런 변화는 상황에 따라 옳음과 그름을 뒤바꾸는데 일조한다. 반면 농담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자연스레 오간다. 때에 따라 진실로, 거짓으로서의 역할을 해 상황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루트비크는 당(전체)이 루트비크(개인)의 생각을 검열하는 체제 속에서 농담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 아니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한 마디 농담으로 인해 당에서 버려진 루트비크는 자기 자신이 농담의 한 구절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책 속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렇다면 그 시절 나는 정말 누구였을까? 이 질문에 나는 아주 정확하게 답하고 싶다. 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직 농담만이 루트비크 자신을 설명하는 수단이었기에, 저자 밀란 쿤데라가 역사적 상황에서 실존의 존재를 강렬한 빛으로 내리쬐려 했던 것일까.

박범준 기자 leeboss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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