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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학술문학상 대상작] 무사고 730일 (1) - 박인호(미디어콘텐츠과)

등록일 2015년12월07일 14시01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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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은 손에 냉기를 품은 바람이 느껴진다. 돌연 바지를 뚫고 들어온 바람에 주먹을 꽉 쥐어 보지만 손이 시리긴 마찬가지다. 바람을 등지고 주먹을 수차례 쥐었다 폈다 하던 중 내 옆으로 버스가 멈춰 선다. 8407. 내가 탈 버스 번호는 아니다.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고, 멈춰서 있는 버스 옆구리의 광고를 쳐다봤다. 광고에는 대학교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는 종이가 있었고 종이 위로 요란스러운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 동그라미는 위에서 다섯 번째로 적힌 한 대학 이름 위에 있었고 빨간 동그라미 위로 큼지막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00대학 전국 대학 종합 평가 5내 시선이 숫자 5에 다다르자 버스는 약간의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떠나가는 버스 뒤통수에도 적혀있는 “00대학 전국 대학 종합 평가 5를 보며 왠지 모를 회의감에 휩싸일 때 쯤, 내 옆으로 버스 한 대가 다시 섰다.

8109. 이 버스다. 나는 이미 차가워진 손을 뒷주머니로 옮겨 지갑에서 버스카드를 꺼내며 버스에 올라탔다. . 버스기사 뒷자리가 비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다. 여긴 창가여서 바깥 구경하기도 좋고, 바로 옆자리는 거의 공석이기 때문이다. 버스가 만원일 경우를 제외하면. 몸을 움츠리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딱히 무엇을 쳐다보려고 내다 본 것은 아니었기에 밖을 바라보는 내 두 눈은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초점 없던 내 눈이 다시 초점을 회복한 것은 공사현장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본 이후였다. 현수막엔 아파트 공사현장 무사고 170일 달성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8407 버스 옆구리 광고란에 적혀있던 숫자 5와 방금 본 170이라는 숫자 때문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고발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예전처럼 덮어두고 지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던 중에 창밖으로 동네 어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어나 버스 뒷문으로 향했다. 복잡해진 머리 때문인지 버스가 급정거 하는지도 모르고 서 있다가 넘어질 뻔 했다.

버스에서 내린 후 길을 걷고 있을 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주머니에 넣은 손을 뺄까 말까 고민하다가 슬쩍 빼서 휴대폰을 확인하였다. 친구 녀석이다. 여자친구와 100일 됐다며 빨리 축하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축하한다고 입력하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곧바로 답장하지 않자, 친구가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온다. ‘100일이라고!’ ‘100일 이라니까 인마!’ 하는. 100일이 그렇게 중요한 날인가? 숫자가 그리도 중요한 건가? 도대체 숫자가 뭐라고...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머릿속에서 5170, 100이 정신없이 돌아다녀서 두개골에 부딪히는 듯했다. 축하한다는 나의 답장은 수 십 발자국이나 지나온 뒤에야 겨우 보내졌다.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닥을 보며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병훈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지금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날 보며 웃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 가장 친했던 친구인 문규의 어머니였다. 문규 어머니는 웃으며 같이 집에 가자고 하셨다. 대답도 하기 전에 팔짱을 끼고 끌고 오시는 바람에 집 안까지 들어와 버렸다. 문규와 어울려 놀면서 많이 와봤던 집이지만 문규가 없는 지금은 너무나 어색하고 낯설다. 어머니는 잠깐 기다리라고, 금방 저녁 해주신다며 부엌으로 가셨다. 내 발걸음은 문규가 없는 문규의 방으로 나도 모르게 향했다. 문규의 방 벽에는 나와 찍은 사진들과 각종 상장들이 붙어있었다. 고등학교 때 맞았던 내 첫 생일 때 찍은 사진부터 머리를 빡빡 밀고 훈련소 앞에서 찍은 사진까지. 환하게 웃고 있는 문규의 얼굴을 보니 돌연 내 두 볼 위로 문규와의 따뜻한 추억이 흐르는 것 같았다. 문규의 그 티 없이 깨끗했던 웃음을 떠올리던 중, 문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닦고 나가자 식탁엔 문규가 좋아했던 반찬들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얼른 먹으라며 웃으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시는 문규 어머니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역시 하는 편이 낫겠다고. 고발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양말을 벗을 새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 아고라에 들어갔다. 이야기 탭에서 억울 카테고리로 들어가 스크롤을 내려 이야기 글쓰기를 클릭했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굵은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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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굳이 3년 전의 이야기를 이 게시판에서 꺼내는 것은 그저 지난 삼 년간 느껴왔던 지독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며, 내 불쌍한 친구 문규의 어머니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강원도 철원의 한 수송대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아래부터는 편하게 체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이 되겠지만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년 전, 나는 군 복무 중이었다. 내가 군 복무를 했던 곳은 강원도 철원에 있는 수송대대였다. 수송대대는 사단에 속해있는 부대로 사단 아래에 있는 부대들의 수송 지원업무와 차량 및 수송 장비의 정비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수송지원 업무란 부대 간의 식량 배달이나 보급품 전달 등의 업무였고, 정비업무는 차량을 비롯한 전차, 수송장비 등의 부품 교환 및 정기 정검 등의 업무였다. 나는 수송대대에서 1호차를 운전하는 대대장 운전병이었다. 말하자면 수송대장의 개인 기사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드라마에서 사장들이 기사, 대기시켜하면 등장하는 운전기사처럼 항상 대기해야 하는 보직이었다. 우리 대대는 장비를 다루는 부대이니만큼 사고에 무척이나 민감했다. 수송 정비고에는 항상 무사고 푯말이 붙어 있었으며, 대대장을 태우면 항상 나오는 첫 마디가 오늘은 무사고 며칠이냐?”였을 정도니.

나와 동반입대를 했던 문규는 정비병이었다. 문규는 나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물론 내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 때문에 먼저 말을 걸어온 건 문규 쪽이었다. 중학교에서 막 고등학교로 올라와 아는 친구도 몇 명 없었던 고1 첫 학기. 문규는 내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 이후로 문규와 친하게 지냈다. 내성적이고 생각 많던 나는 외향적이며 활달한 문규 옆에 있으면 나도 같이 밝아지는 기분이었기에 더 붙어 다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내 성격 탓인지 문규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지는 못했는데, 여름방학이 다가오던 고1, 7월의 수학시간 이후에 우리는 완전한 단짝이 됐다. 방학을 앞 둔 설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나이 때의 장난기 때문이었는지 정말 흔히 하는 말처럼, 나는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나왔었다. 물론 그 때 낙엽은 없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일 때문에 터졌던 웃음을 참지 못했던 나는 수업시간에도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수학선생님은 내 웃음 소리에 상당한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는지,

방금 웃은 놈 누구야! 당장 나와!”

하고 소리를 빽 지르셨다. 그제야 웃음은 멈췄고, 교실의 공기는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누구냐고! 빨리 안 나오면 너희 전체 다 맞는다!”

선생님의 호통은 나로 하여금 더 나라고 밝힐 수 없게 만들었다.

셋 셀 동안 안 나오면 너흰 다 죽는 줄 알아!”

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생님은 숫자를 세어 나가셨다.

하나, ...”

마지막 숫자가 세어지지 말라는 듯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마지막 숫자 셋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참동안이나 선생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떠 보니 내 앞 자리에 앉아있던 문규가 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끌려 나가면서 문규는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끌려 나간 문규는 칠판을 잡고 엎드렸고, 그의 엉덩이는 수학선생님의 올라가는 자존심과는 반대로 점점 내려가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어깨동무를 풀지 않았다.

문규의 헌신적인 의리는 군 생활 할 때도 계속 되었다. 의리의 대상은 문규의 후임들 이었고, 그의 헌신적인 후임 챙기기는 간부와 선임들의 눈 밖에 나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문규의 이런 성격 탓에 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 문규와 점점 멀어졌다. 나야 워낙 조용히 묻어가기 좋아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그렇게 데면데면 문규와 지내던 중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 날은 한국과 일본이 친선 축구 경기를 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원래 일과가 끝나면 수송 정비고 정리는 전부터 후임들이 맡아서 해 왔다. 나는 그때 상병 초 정도 돼서 정리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축구를 보러 서둘러 TV가 있는 생활관으로 내려왔다. TV를 켜고 애국가를 들을 때 쯤 후임들이 들어왔고, 같이 축구를 봤다. 1호차 정리 때문에 선임 중엔 내가 제일 늦게 생활관으로 내려왔지만 내 뒤를 바로 따라 들어온 후임들에게 정리 다 했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뭐 알아서 했겠지 하고. 다음날 아침, 수송 정비고에 올라가자 수송관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고 수송 정비 병사들 전원이 엎드려 있었다. 대대장 출근 운행을 다녀왔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도착한 나는 일단 분위기를 보고 엎드렸다. 그리고 옆에 엎드려 있는 후임에게 물었다.

, 분위기 왜 이래?”

내 바로 밑의 후임이었던 그 친구는 이마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대답했다.

, 막내들이 어제 정비고 정리 안 하고 내려간 모양입니다. 차량점검도 안 하는 바람에 1호차 제외하고 모든 차가 방전이 나서 어떤 차도 운행을 못 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차량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았던 난 생각했다. 내리갈굼 시작이겠구나. 한창 화를 내던 수송관이 나가자 엎드려 있던 최고참들이 일어났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 나는 내 짐작이 틀림없겠다고 확신했다. 최고참들 밑으론 계속 엎드려 있었고, 그 최고참들은 차마 입에도 담을 수 없을 만큼 험한 욕을 내뱉고 나갔다. 최고참들이 나가자 그 밑의 고참들이 일어나 욕설을 내뱉으며 우리를 갈궜고, 그들이 나가면 그 다음 고참들, 그리고 다음 고참들이 말 그대로 내려 갈궜다. 내 머리가 향해 있는 곳의 바닥이 땀으로 흥건해졌을 때 쯤. 나와 문규의 차례가 되었다. 선임들에게 욕먹은 것이 억울하고 멍청한 후임 때문에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꾹꾹 눌러 왔던 욕들이 입 밖으로 막 튀어나가려던 순간, 문규가 먼저 입을 뗐다.

일어나 얘들아.”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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