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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학술문학상 최우수상작] 친애하는 사슴 (1) - 구자훈(환경조경과)

등록일 2015년12월07일 14시06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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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은 더 이상 사슴을 먹기 위해 사냥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슴을 죽이기 직전까지의 추격전이, 상황을 압도하는 그 힘이 유희이다. 따라서 그 유희란 사슴을 죽임과 동시에 죽는다.

그러나 어느날 사냥꾼이 스코프로 사슴을 겨누었을 때에 서로의 눈이 마주본다면, 사냥꾼은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것인가?

찰나라도 머뭇했다면 그것은 하잖은 동정심 때문인가? 사슴은 슬픈 눈을 짓지도 않는다. 아니, 사슴은 되려 당당하게 목을 뻐대며 직시한다. 순간 상황은 사슴에게 먹혀버린다. 방아쇠를 당겨야할지, 물러서서 도망을 쳐야할지, 사냥꾼은 해답을 찾지 못하고 당황해서 총을 내린다.

 

이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을 형사인 나는 곧잘 마주친다. 모든 증거를 다 드러내 보이며 붙잡은 용의자가 나를 고요하게 바라보며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한 용의자들은 보통 형장에서 총알에 심장을 뚫리는 순간까지도 고요한,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때에 대게 나는 순간적으로는 당황하지만, 그래도 모은 증거들과 증언들을 그대로 밀고나가 끝내 형을 선고받도록 완결시킨다. 사건을 완결짓는 데에 크게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기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2년 전의 한 사건을 겪고난 후로는,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한 역설적인 상황에서의 피차의 관계를 도저히 넘겨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쫓는 사람은 누구이고 쫓기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나는 그 때 잘리고서 도톰하게 살이 올라온 약지 끝 한마디를 매만질 때마다 그 생각을 하는 것이다. 누가 쫓고 누가 쫓긴단 말인가?

2년 전 사건은 진상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이 아무도 모르게 잊혀지고 만 한 실종사건이었다.

 

김진명 실종사건은 처음부터 결코 커다란 사건이 아니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앞서 큰 사건 몇 개를 성공적으로 처리해냈고, 이제 흐름을 탄 나는 수사란 것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부하 둘을 데리고 사건을 지휘하는 위치로 올라왔고, 못해낼 것이 없었다. 성공적인 사냥꾼이 된 것처럼 나는 원하는 사건을 어느 정도 고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쉬어가는 겸으로 맡은 사건이었고, 나는 여유롭게 생각했다. 사람 한 명쯤 실종되는 일이야 언제든 발생되는 일이었고, 김진명이란 사람도 그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사를 시작하면서 겪어본 적 없는 난항에 부딪쳤다. 김진명이란 사람이 알려진 사람도 아닌 것을 넘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의 실종 신고조차 그의 밀린 방세를 받으려던 집주인이 낸 신고였다. 도저히 조사할 사람도 목격자도 없는 실종이라서, 나는 수사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헛다리만 짚고 있었다. 이미 조사한 진명의 집을 다시 들쑤시고, 책 한 쪼가리라도 다시 뜯어보며 골머리를 썩였다. 나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란 나에 대한 믿음 하나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해낼 수 있단 생각뿐이었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K였다.

그는 경찰서에 깔끔한 정장 차림에 긴장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k는 본인이 김진명의 오랜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진명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듣는 순간 머리 끝까지 소름이 돋아올라 바로 이렇게 찾아왔다고 했다. k는 이 사건의 핵심에 있을 한 사람을 뚜렷하게 안다고 했다.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경청해주기로 했다.

왜일까? 떠올려보면 나는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 김진명은 총포상에서 오랜 세월 일해온 사람이다. 그동안 총포상이란 것이 마음에 들어서, 아예 여기서 모은 돈으로 자신의 총포상을 새로 차리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그런 김진명이 어느날 총포상을 관뒀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진명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k는 물었다. 대체 왜? 그러자 진명은 이유모를 미소만 짓는 것이었다. 결국 술자리가 끝나고 헤어지기 직전에야 한 마디 던져주었다.

거래를 했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 있어” ]

 

이해가 잘 안되는군요. 누가 뭘 어떻게 돕는다는 겁니까?”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김진명이란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부터 아셔야 합니다.”

나는 왠지모를 불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당신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란 말입니까?”

김진명의 친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확인해보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제 이야기부터 들어주셔야 합니다. 지금 김진명이란 친구는 실종이 아니라 죽어있을 거란 말입니다.”

 

[ 김진명은 말하자면 가난하고 불쌍한 축에 끼는 사람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핏줄 하나 없이 혼자서 살아남느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 엘리트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진명이 총포상이란 곳에 일을 갖게된 것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지점이었다. 총포상이란 쉽게 열 수 있는 성격의 가게가 아니고, 구매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국가에서 허가를 받은 가게에서, 국가에서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것이었다. 뭐든지 혼자서 해와야만 했던 그에게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에 인증을 받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게다가 국가에 소속된 사람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라서, 지금껏 그가 살아왔던 것처럼 어느 정도의 지저분한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모든 것을 신경쓰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인증해준 것들만 다루면 되는 일이기에, 그만큼 덜 피곤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너무나 중요했다. 그는 이제 그만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이 되도록 생계만을 위한 일에만 치여 살았다. 그는 이제 정말로 쉬고 싶었다.

진명에게 나중에야 들었지만 그 도와준다는 사람은 사장이 가게를 비운 새에만 몇 번이나 찾아온 단골 고객이었다. 그 고객은 정중하고 꼼꼼한 남자였다. 총 하나를 골라도 그냥 사가는 법 없이 상세한 기능부터 수리 방법까지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설명을 끝내고나면 언제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남기고 총을 사갔다. 그와 거래를 하고 나면 진명은 기분이 좋아져서 그를 위해 총을 더 알아보고, 더 들여오고는 하였다. 그도 언젠가부터 진명에게만 총을 소개받고, 진명에게만 거래했다. 진명이 거래를 하며 느끼기에 그는 상당한 부자로 보였는데, 자수성가보다는 몇 대에 걸친 유산을 물려받아온 거대한 가문의 사람인 것 같았다.

언젠가는 총을 설명해주는 진명의 한 쪽 눈을 그가 차갑게 보고 있었다. 진명이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이 꼭 저 헌팅트로피 같아요, 저 사슴 눈 말입니다. 진명은 멋쩍게 웃어보였다. 남자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 부쩍 피곤해보인다고. 진명은 제법 친해진 것 같아 털어놓았다.

이 일에서 더 이상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거든요.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요.”

남자는 대답대신 이해한다는 듯 끄덕여보였다.

글쎄요. 사실 이제는 좀 쉬고 싶어요. 그동안 일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한시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 굶으니까. 지금이든, 나중이든. 이젠 좀 쉬고 싶어요. 마음을 한시라도 내려놓고 싶네요.”

재밌는 거래 하나 해볼래요?”

남자가 한 말이었다. 진명은 무슨 농담일까 생각했다.

당신이 평생 쉴 수 있게 해줄게요. 평생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도록 해주겠습니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어요. 당신이 원하는 언제든, 당신이 죽고 싶어진다면 언제든 나를 불러요. 내가 총으로 당신을 쏠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을 사살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순간에만 쏘겠습니다. 그럼 그 순간까지 당신의 삶 전체를 책임지고, 도와주겠습니다. 당신은 내 손에 죽는 대신,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겁니다.” ]

 

나는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럼 그 도와준다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 고객. 그 부잣집 남자말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사건의 핵심이란 말입니다.”

김진명씨가 그 거래에 응했다는 말입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거래에?”

적어도 제가 들은 바로는요.”

뭘 믿고 말입니까?”

그 남자가 일종의 계약금으로 통장 하나를 내어주었고, 그리곤 유언장을 써서 나눠가졌답니다. 그 내용은, 3조에 이르는 남자의 유산에 진명이 40퍼센트의 지분을 갖는다는 내용이었답니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갑자기 죽더라도 진명의 삶을 보장하겠다는 뜻이었겠죠.”

나는 의자등에 기대어 앉았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있었다. k는 와인색 니트를 안에 받쳐입고 있었다. 내게 신뢰를 얻기 위해 일부러 단정하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온 거겠지. 앞주머니엔 뭐가 들었는지 살짝 불룩했다. 뭐가 들은 걸까? 그의 눈은 내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그 남자를 찾으세요. 그 총포상의 사장을 조사하면 될 겁니다.”

나는 대답대신 주머니를 뒤적였다.

담배 피십니까?”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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