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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학술문학상 최우수상작] 친애하는 사슴 (3) - 구자훈(환경조경과)

등록일 2015년12월07일 14시26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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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세요, 제이콥이에요 이거. 진명이가 아니라.”

너이새끼 왜 여기있어. 니가 범인이지. 니가 그 부자새끼잖아 젠장. 처음부터 느낌이 안좋았어. 처음부터.”

화난다고 반말하시네요.”

나는 대답대신 수갑을 꺼냈다. 총 끝으로 조준한 채로 천천히 다가가 k의 한 손에 수갑을 채웠다.

됐어. 잡았어 이새끼. 너 이제 끌고가서 좆나게 심문할 거야. 내 부하들도 이제 니 몽타주를 들고 올 거고 이제 다 끝났어.”

k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치? 혼자 올 줄 알았어요.”

k는 칼을 주워 내 손목을 찔렀다. 나는 총을 떨어뜨렸고 턱을 갈겨맞아 그대로 기절했다. 의식을 잃어가는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k는 나를 의자로 끌고가며 말했다.

있어봐요. 내가 잘 설명해줄게. 나랑 진명이가 얼마나 애틋한 사이인지.”

나는 완전히 그에게 잡아먹혀 있었다.

 

[ 진명은 유독 총포상 사장을 싫어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느날 그 이유를 자각한 이후부터 그의 표정은 도저히 밝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자신도 저 의심병에 찌든 미친 사장과 똑같은 사람이 될 것이란 사실이었다. 이미 자신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국가에서 인증된 일만 처리하는 안정감 있는 일이라도 결국은 저런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진명은 더 이상 제 인생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k가 찾아왔다. 진명은 k마저도 처음에는 의심했다. 결국 법적 효력을 지닌 문서를 받고 나서야 k를 믿기 시작했다. 사실 k를 구실로 일을 그만둬버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제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진명은 막상 해볼만한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제 삶을 모두 책임져준다는 k를 하인처럼 부려보았다. 가만히 누워 물을 떠오게 하고 밥을 해오게 하고 벽의 도배를 새로 시켰다. k는 정말로 땀을 흘리며 모든 일을 직접 해주었다. 부모도, 친구도 없다시피 했던 진명에게 이것은 너무나도 신기한 기분이었다. 순간적이지만 k가 착한 사람인 것만 같다는 생각마저도 들곤 했다. 진명은 k의 드넓은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한 날에 도저히 의문을 풀지 못하고 물었다. 자신을 쏘고 싶다면 그저 쏘아버리면 되는 것을, 왜 이렇게까지 해주느냐 k에게 물었다. k는 저도 모르겠다고, 그저 이런 이상한 관계를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어느 날엔 꼭 가보고 싶던 바다에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일광욕을 즐기는 일이라고 해봐야 며칠만 해도 살이 다 타버릴 뿐이었고 결국 바다에 뛰어들어봤자 수영도 할 줄 모르는 그는 지루할 뿐이었다. 그래서 k를 부르자 k는 수구를 가르쳐주고 카약을 가르쳐주었다. 둘이 함께 호흡을 맞추어 카약 한 대로 노를 저어 외딴 섬에 도착해냈을 때, 진명은 마음 속 어딘가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론 진명이 k에게 무엇을 하고 싶느냐 묻기 시작했다. 그때 k가 데려간 것이 사냥이었다. 둘은 제 8사냥터에서 함께 사냥을 하고 다녔다. k는 꺾인 나뭇가지를 보고 사슴의 이동방향을 추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진명은 쫓고 쫓는 추격 끝에 총알로 사슴의 뇌를 꿰어 쓰러뜨리는 순간, 그 유희를 깨달았다. 진명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진명은 사슴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었고, 도망치게 할 수 있었고, 원하는 때에 목숨을 끊어 사냥을 완결지을 수도 있었다. 그 즐거움을 알고나서부터는 이제 같은 한 마리를 각자 반대쪽에서 출발하여 누가 먼저 잡느냐 하는 게임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어느날의 실수로 벌어졌다. 진명이 k를 목표 사슴으로 착각하고 쏴버린 것이다. 다행히 급소에 맞지 않아 병원에서 치료가 되었지만 k는 며칠간 입원을 해야했다. 그동안 할 일이 없어진 진명은 건강검진을 한 번 받아보기로 했고, 여기서 암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물론 k의 조작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진명의 삶의 질로 미루어보아 인과성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진명은 완전히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이제 진명은 두 달짜리 여생을 갖고 있었다. 진명은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날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로 걸어나오다가 k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척하는 것을 보았다. 진명은 k를 껴안았다.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진명은 k에게 사냥을 가자고 했다. k는 직감적으로 진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날, 마치 실수였던 것처럼, 오해였던 것처럼 k는 진명을 사살했다. ]

 

나는 한 번 재미로 해본 거였는데, 정말 생각대로 그대로 움직여줬어요. 끝까지. 정말 재미있었죠. 그래서 새로운 친구를 찾기 시작했어요. 이번엔 또다른 종류의 역할놀이를 하고 싶었지. 그게 바로 당신이야. 당신의 반응도 너무 재미있었고, 그동안 너무 재밌었어요.”

나는 그의 발 밑으로 무엇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분명히 흥미를 말하고 있는 k의 입과 다르게 눈은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k는 스스로 울고 있단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앞주머니에서 반짝이는 것을 꺼내어 시가 끝을 잘랐다. 그리고 내 입에 물려주었다.

, 이게 시가라는 거고, 이 반짝이는 건 시가 커터라는 겁니다. 끝을 잘라주는 거지. 유희가 끝나지 않도록. , 이번에 난 당신을 죽이지 않을 거예요. 대신, 손가락 끝을 잘라서 이 일을, 이 순간을, 나를 죽는 날까지 기억하도록 해줄겁니다.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아요. , 물론 지금 들은 모든 걸 증언으로 사용해봤자 아무 효용이 없어요. 난 어차피 보호해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럼.”

나는 이상하게도 모든 것을 잡아먹힌 이 순간에 k란 인간의 삶을 상상하고 있었다. 저토록 본 적 없는 행동을 하는 k란 인간의 반짝이는 환경과, 보호해주는 높고 높은 사람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 누구에게도 져본 적 없는 k라는 사이코패스를 보고 있지 않았다. 가장 솔직한 모습을 내보이고 있는 k의 삶을 상상하고 있었다. 놀랍도록 지루한 삶을.

k는 의자에 묶인 내 손에 반짝이는 것을 갖다대었다. 나는 웅얼거렸다.

뭐라고요? 잘 안 들리네. 잘라보라고요?”

나는 웅얼거렸다.

실컷 잘라보라고요? 역시 우리 형사님.”

“...살려주세요.”

나는 그의 즐거움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살려주세요 제발.”

나는 이 말이 이 상황의 정답임을 알아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다가, 기어코 내 약지 끝을 잘라내고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나는 고통 속에서 의자와 함께 엎어졌고, 바닥의 물방울이 내 뺨에 튀었다. k는 분명히 울고 있었다. 진명을 죽인 것을 후회하는 것일까? 진명과 다시 함께하고 싶은 것일까? k는 오로지 흥미뿐이었던 것 속에서 감정을 느꼈던 걸까?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누가 누구를 쫓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발견된 것은 그날 새벽이었다. 부하놈들은 나를 떨며 호송했고, 나는 진정시키느라 일은 어떻게 되어가느냐 물었다. 부하놈들은 진명의 시체를 발견했다고 했다. 6사냥터에서였다. 그리고 이제 살인 사건으로 넘어왔는데도, 몽타주가 아무리 요청해도 내려오질 않는다고, 하루면 될 일이 이상하게도 사흘이 넘어도 처리되질 않는다고 의문을 표했다. 나는 대답대신 시체가 발견된 위치가 작성된 문서를 수정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왜인지, 그러고 싶었다. 김진명의 시체가 발견된 곳을 본래 장소로부터 1마일 떨어진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리고 방향은 병원이 있는 곳으로. 진상을 아는 사람이 본다면 마치 진명이 병원으로 기어가다가 죽은 것처럼. 살고 싶었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수사 결과를 실족사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며칠 뒤 k는 제 관자놀이에 총을 쏘아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아무도 모르게 묻혀버렸다. 위에서 보호라도 해주듯이.

 

나는 추격한 것일까 추격당한 것일까?

k는 진명을 추격한 것일까 추격당한 것일까?

나는 잡아먹은 것일까 잡아먹힌 것일까?

k는 진명을 잡아먹은 것일까 잡아먹힌 것일까?

나는 아직도 새로운 사건을 맡을 때마다 도톰하게 돋은 절반짜리 약지를 매만진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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