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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신구학술문학상 장려상작] 벽-어느 사내의 연가- (1) - 유시안(물리치료과)

등록일 2015년12월07일 14시29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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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제가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답해드릴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V 원하신다면야 고 년의 집 마룻바닥에 몇 개의 흠이 나 있나 까지도 말씀드릴 수 있다니까요, 암요. , 선생님께서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여기 사람들은 도무지 제V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제가 목청껏 제 억울함을 소리쳐보았자 웬걸,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렇게 무정한 놈들은 태어나 처음 보았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철면피들 같으니! 어이쿠, 이거야 원, 잡담이 너무 길었군요. 선생님 눈에 벌써부터 신물이 난 것이V 훤히 보입니다요. 아무튼, 제 이야기가 끝나면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주신다 꼭 약조해주시는 겁니다. ?

저는 팔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다섯이라는 숫자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장남도 막내도 아닌 것이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모양새인지라, 저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겉돌곤 했습죠. 공부도 운동도 썩V 잘하는 편이 못 되어서, 결국 산으로V 들로 쏘다니며 곤충들을 잡아다가 핀으로 집어보거나 날개를 뜯어내거나 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디다. ? 잔인하다고요? 하하, 그맘때 어린아이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하간 고향이라 해봤자 산골짜기 촌 동네입니다만, 모친께서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부친께서는 농사에 몸을 담고 계신 분인지라 가족의 대부분이 고 자그마한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습죠. 저 역시도V 셋째 형님께서 상경의 결심을 내비치시기 전까지는 고향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물 농사나 지을 작정이었습니다. 그것이 제 좁은 식견의- 셋째 형님의 말을 빌리자면 시골뜨기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였습디다 그려. 선생님께서도V 아시다시피 본래 남매라는 것은 바로 밑의 형제보다야 한두 손아래 형제와 더 마음이 맞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저와 셋째 형님도 그런 사이였습니다. 뭐 처음에야 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을 뒤로하고 어찌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도시로 나가겠다 하시는지 저로써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만,V 셋째 형님의 말씀을 차근차근 듣고 있자니 제 마음도 흑설탕에 절인 돼지고기마냥 연해졌다, 이 말입니다.

 

"내 아버님 말씀대로 둘째 형님처럼V 공부가 특출나 특별히 서울로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만, 그렇다고 아버님이나 첫째 형님처럼 한평생 비료 더미나 뒤적이는 것은 싫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난 이상 칼로 무라도 썰고 가야지, 안 그러면 우리들은 영원히 이 조그마한 촌구석에서 우물 안V 개구리마냥 눈만 껌벅껌벅하며 썩어나야V 한다, 이 말씀이야."

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으시니 아무 것도 모르는 당시의 저로서야 그저 형님께서 사주신 사탕이나 쪽쪽 빨며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요. 형님께서 서울로 올라가신 후로도 저는V 여전히 물방개나 황소개구리나 찔러 죽이며 놀았습니다만, , 그래도 그 후로 도시라는 곳에 대하여 막연한 동경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게 기회가 생겼습니다. 오일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께서 한숨만 푹푹 내쉬며 담배만 태우시는 것이 눈에 뜨인 겁니다.

 

"아부지, 거 무슨 일이우?"

"아랫마을 김 씨가 서울로 장터를V 바꿨드니 대박이 났다 카드라. 노다지도 그른 노다지가 없다 카든데. 니도V 알겄지만 우리 집도 슬슬 빠듯하지 않드냐. 여슷째 일곱째들도 점점 커가구, 서울 나간 니 행님들도 단디 챙겨야 허니……."

"그럼 우리도 작물팔이하는 장소를 바꾸면 될 것 아니우?"

"욘석아, 그게 그리 쉬운 일이믄V 내 이러고 있겄나. 아버지는 한평생 촌에만 살다보니 도시에 대해서는 아는V 게 없어야. 도시로 나간 느이 둘째 형은 어렸을 적부터 책만 붙들던 놈이다 보니 농삿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V 없고, 셋째에게 부탁하자니 내 면목이V 읎어서……."

 

아버지는 담뱃재만 탈탈 털어내시며 제 눈치만 살피셨습니다. 형님께서 서울 올라가실 적에 한바탕 크게 싸우신V 것은 제가 단디 기억하고 있지요. 셋째 형님과 유달리 사이가 좋았던 제게V 도움을 요청하는 말이 분명했습니다. 한편 저는 '서울' 이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지요. 늘 뚝뚝하던 노인네가 나이가 들었다고 이리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습기도 했습니다만,V 이를 잘만 이용하면 공부도 뭐도 못하는 저일지언정 도시구경을 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못이기는 척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부지, 그럼 그 연락 내가 하리다. 전화기 이리 주소."

"하이고야, 다슷째야, 니 그런 소리일랑 하지 말어. 셋째가 장터를 알아봐준다 한들 작물을 싣고 가서 팔 사람이 읎는데 그 다음은 어찌하려 그러나."

"아부지도 참, 그까짓 거 얼마나 어렵다고. 그것도 내가 하리다."

 

그리하여 저는 서울까지 아버지의 트럭을 몰고 다니는 일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래,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V 일이 술술 잘 풀려가고 있던 것 같습니다.

 

갓 상경했을 무렵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 짝이 없었습니다만, 몇 달이 지나자 도시도 별거 없는 곳이 되더군요. 밤낮없이 운전대만 잡아야 하는 반복적인 일상에 싫증이 나버린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여하간 서울에서의 일에 슬슬 신물이 날 때 즈음 하늘에서 저를 불쌍히 여기신 신의 배려인지 장난인지, 웬 동아줄이 하나 덜컥 내려 왔습니다. 기사식당에서 어울리는 트럭 기사들 등쌀에 못 이겨 따라간 곳이었는데어유……. , 어디를 말하는 거냐고요? 흐흐,V 선생님도 참, 어디긴 어디겠습니까? 예쁜 계집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지요. 그런 별천지는 또 처음 보았습니다 그려……. 저는 그것이 제대로 된 동아줄인지 썩은 것인지 구별도 하지 않고 냉큼 붙잡았읍죠.

기사들이 지명한 여자들이 자기는 누구누구라고 소개를 하는데 거기 우리 미희도 있었습니다. , 수줍은 듯 뻐끔거리는 모습에는 옆집 영이나 건넛마을 정순이 따위에게는 결코 찾아볼 수 없던, 도시 여자 특유의 세련된 아름다움과 갓 물이 오른 처녀 특유의V 수줍음이 한껏 피어 있었습니다. 저는 단번에 제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허허, 눈이 훼까닥 돌아가 달려들었습죠. 다음 날에도 고 야들야들한 것을 잊을 수가 없어,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홀몸으로 가게를 찾아갔는데, 여전히 저를 반갑게 반겨주며 오빠, 하고 간드러지게도 불러주는 미희와 입꼬리가 헤벌쭉 올라간 거울 너머의 제보기 흉한 얼굴만큼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겨져 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미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서울과 촌을 깔짝깔짝 왕래하던V 것을 집어치우고, 트럭 관리며 이것저것 할 것이 많다 핑계를 대어서는 미희네 가게 근처로 새 거처를 잡았습니다. 원래 세 들어오기로 예정되어 있던 사람이 증축을 하네 마네 하며 집주인과 옥신각신하다, 무엇인가 하자를V 남겨두고 떠난 탓에 값이 특출나게 싼 곳이었습죠. 저는 그 사실을 입주하고V 한 달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하자란 욕실과 제 방 사이에 들어서 있는 자그마한 방- 정확히는 벽장처럼 생긴 네모난 공간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간은 욕실의 왼쪽 벽을 통해 들어갈 수가 있었지요. 입주자를 받으러 급하게 마무리를 지은 탓에 벽에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타일이V 붙은 회반죽이 무너지면서 공간이 드러나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침실 하나 욕실 하나가 겨우 딸린 좁은 집에 사람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는 기이한 공간이 있었으니 확실히 방이 비좁게 느껴진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만, 아무튼 당시의 저에게는 미희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무너진 회벽은 샤워 커어튼에 압정을 박아 가려 놓았지요.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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