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희는 이제 스무 살을 조금 넘긴 여자아이로, 굴도 예쁘장하지만 애교가 많고 활발한 그 성격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나잇대 계집년들이 다 그렇듯 잘 토라지기도 해서 사소한 일로도 금세 입술을 비죽이며 팩 고개를 돌리곤 했습니다. 고게 그렇게 앵돌아질 때면 저는 서울 사람들이 하듯 품 안 가득V 가방이며 선물을 가득 사서 어르고 달래주었지요. 그 선물이란 짐작하시다시피 값비싼 구두나 이름있는 상표의 가방 같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시골뜨기V 형편에 지출이야 퍽 큰 것이었습니다만, 그렇게 살을 떼는 선물을 했을 때 미희의 반응은 가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 얼른 여기 그만두고 오빠한테 시집가야겠다."
아, 제 팔짱을 끼고는 가슴을 착 붙이는 모습이 그렇게도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저를 그렇게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시겠지만, 아마 선생님도 우리 미희를 보시면 헤어나오시지 못하실 겁니다, 암요. 여하간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그렇게 미희와 몇 달을 만나고 나니 가게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쉬워졌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트럭 운전도 그만두고 미희와 신선놀음이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만 돈이라는 것이 없으면 미희에게 선물도 해 줄 수 없는 가엾은 신세이다 보니 손에서 운전대를 놓을 수가 없더군요. 결국 안된다는 마담을 붙잡아서 미희네 거쳐며 휴대전화 번호도 따내서는, 시간만 나면 둘이서 영등포고 명동이고 놀러 다녔지요. 만 원짜리 몇 장만 쥐여주면 그리도 쉽게 넙죽넙죽 불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술자리에서도 트럭기사들이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치곤 했습니다.
"야아, 이거이거, 이젠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이라고 어디 무서워서 놀려먹겠나, 응?"
"그러게나 말이야, 이젠 우리가 한 수 배워야겠네 그려!"
"그 뭐냐, 그래, 여인네들 눈물을 쏙 빼놓는 진짜 사내가 다 되었구먼!"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칭찬에 어깨가V 다 으쓱해졌습니다. 가게에 들리면 이 계집 저 계집 옆구리에 껴보긴 했습니다만, 역시 제가 제일 총애하는 것은V 우리 미희였습죠. 그걸 알고 있는 것인지 가게에서 일하는 계집들은 마담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다 저를 미희 남편으로 불렀는데 미희도 그리 싫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저도 좋으면서 아이,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하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 어찌나 귀엽던지. 아, 요 년이 조금만 꼬시면 색시 삼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제 가슴은V 쿵쾅쿵쾅 뛰었지요.
허허,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언제 하느냐, 그 말씀이십니까? 이제 다 되어 갑니다. 저도 일분일초가 급한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계집놀음에 정신이 팔려 집에 송금도 하지 않고 형제들과 연락을 끊은 지가 몇 달이나 지났습니다. 지출이 많다 뭐가V 어떻다, 시시콜콜 잔소리를 늘어놓는 노인네의 말이 그렇게 듣기 싫을 수가V 없었던 것입니다. 서울 사는 놈들에게V 뒤쳐지지 않기 위해 휴대전화라는 것도V 사서 미희와 연락을 하기 시작하자 돈 새나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선물을 사기 위해 대출도 하고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한 제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물의 개수가 적어지자 미희는 점점 야속해져만 갔습니다. 급기야는 다니던 작물팔이장도 그만두게V 된 어느 저녁, 다급해진 저는 미희를V 집에 불러다 놓고 중대발표를 하였습니다. 저 먹으라고 비싼 사과도 깎아 놓았는데 미희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요.
"미희, 오빠랑 같이 고향으로 가지."
좋아요, 내지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일 미희의 모습을 기대하던 제게, 미희가 돌려준 답변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싫어요."
미희가 고개를 내저으며 잡은 내 손을 떨쳐내었습니다.
"난 아직 젊어요. 결혼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여자가 스물둘이면 좋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지."
속에서 부아가 부글부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습니다. 오빠한테 시집온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었느냐고요. 그러자 계집이 서서히 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빠알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얄밉게도 비틀려 있었습니다.
"오빠네 고향은 촌구석이라면서요? 수산시장 김 씨 아저씨가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난 도시가 더 좋아요."
"미희……."
"나 다 들었어요. 오빠가 여기저기 돈을 빌리고 다닌다는 것도, 성실치 못하게 행동해서 작물장에서 잘렸다는 것도, 전부 다요. 난 능력 없는 남자는 딱 질색이에요. 그게 나이 많은 촌뜨기에 무책임한 사람이면 더더욱 싫어요."
미희는 매몰차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무튼, 난 못 그만둬요. 이제 집에 갈테야."
"이 년이!"
조금만 더 참고 투자하면 번듯하게 젊고 예쁜 새색시를 데리고 돌아갈 수 있는데, 조금만 더 투자하면, 조금만 더 투자하면.
저는 그런 생각을 하던 저 자신이, 아니 그런 생각을 품도록 만든 이 요사스런 여자가 죽도록 원망스러워졌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툭 끊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슴 속에서 불길이 확 이는가 싶더니만,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미희에게로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가느다란 목이 제 투박하고 거친 손안에 온전히 들어와 펄떡펄떡 뛰어대는 것이 느껴지자 안 그래도 분에 못 이겨 달아올라 있던 두 손이 확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그간의 울분을 담아 이 밉살스런 계집을 있는 힘껏 흔들어댔습니다. 이 망할 년, 내가 너에게 들인 돈이, 노력이, 얼만데. 너 때문에 빚까지 져가며 불탔던 내 순정은 어찌할 셈이냐, 그러나 어째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전혀 다른, 핏대가 가득 들어간 말이었습니다.
"이 년아, 너 이래봬도 내가 카사노바, 계집년들 눈물 콧물 쏙 빼놓는V 방, 방배동 카사노바야, 알아, 어?"
"아아악!"
힘을 너무 주었던 탓일까요, 외마디V비명과 함께 미희가 고꾸라져 넘어졌습니다. 먹으라고 깎아놓은 사과 접시 위로 꼴사납게도 고꾸라졌지요. 그 바람에 포오크가 얼굴에 박히고 말았습니다. 게엑, 게엑,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만, 꿈틀꿈틀 몸을 떨던 년이 금세 조용해지더군요. 그 소리는 마치 제가 어린시절 배를 찔러대던 흉물스런 개구리 소리와 닮아 있었습니다. 덜컥 겁이 나 미희의 얼굴을 들어올리고 코에 손가락을 대 보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숨은 붙어 있더군요. 생사가 확인되자 우선 미희에게 미안해졌습니다. 그래도 그간 쌓아온 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마누라나 다름없던 여자에게 너무 심했던 것 같아 저는 미희의 얼굴에 손수 빨간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온정을 베풀고 미희를 깨우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요게 몸이 다 나아서 이 방을 나가면 또 다른 놈팽이에게 살랑살랑 꼬리를 치러 가는 것이 아닐까, 남편 되는 제 지아비를 놔두고.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게 고스란히 순정을 바친 남자 앞에서 그래서는V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다가는 또 어떤 사단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어찌하나, 숨만 가쁘게 몰아쉬는 미희를 안고 발만 동동 구르던 제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벽.
'그래, 욕실 벽의 그 공간에 미희를 넣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는 미희를 그 비밀스런 공간에다 밀어넣고는, 커어텐 대신에 회반죽을 발라버린 것이었습니다. 물론 평생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고 어린 것이제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만, 참회하고 제게 용서를 구할 때까지만 그럴 셈이었습니다. 왜 사자도 제 새끼는 절벽에서 떨어뜨린다 하지 않았습니까? 제게 있어 미희는 애인이자 딸자식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미희가 잘못된 길에 빠지려 든다면 엄연히 지아비이자 아비 되는 제가 고쳐주어야 하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저는 미희에게 미안함을 담아 최대한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내 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려줄 테니, 네 잘못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꺼내달라고 벽을 두들기라. 그라믄 꺼내줄 터이니."
물론 미희는 지쳐 있는지 대답이 없었습니다만, 저도 생각이 있으면, 아니 배가 고파서라도 나중에 벽을 두드리겠지요. 그러나 미희 고 계집은 아직까지도 벽을 두드리고 있지 않습니다. 참 고집도 센 년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닭도 닷새, 거북이는 이삼주 동안도 밥 없이 살 수 있다던데, 하물며 짐승보다 위인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알면서도 벽 틈새로 밥을 밀어넣어주고는 있는데 여전히 벽을 두드리는 소리는 나지 않더군요. 고 건방진 태도가V 괘씸하기는 하지만, 제가 본디 이리도V 온정이 많은 사람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혹시나 싶어 틈새 사이로 손을 넣어보았지만 접시 비슷한 것은 전혀 만져지지 않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그게 제 유일한 위안거리이지요. 여하간 저는 이번에는 섣불리 손을 대지 않고, 미희의 의사를 존중하여 계집이 벽을 두드릴 날만을 얌전히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여기서 이렇게 한가히 시간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언제 그녀가 꺼내달라, 제 잘못을 빌며 참회의 눈물과 함께 벽을 두드릴지 모른단 말입니다. 예?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