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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신구학술문학상 입선작] 마음 속의 별을 찾아 떠난 청춘 - 문인식(웹IT전공)

등록일 2015년12월07일 14시35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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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장 정리를 하다가 중학교 시절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누렇게 빛바랜 일기장을 넘겨보자니 그 시절의 치기 어린 열정과 분노, 환희가 군데군데 보여 읽는 내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철없던 14살 소년은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포부를 일기장에 힘주어 써내려갔었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25살의 청년은 학업과 취업, 학비 마련과 같은 현실에 치여 일기쓰기의 즐거움 같은 것은 잊고 살고 있었다.

문득 현실에 주어진 것을 잠시 내려놓고 내 젊은 날에 새 창을 열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휴학 기간 동안 벌어둔 돈으로 경비를 하며 몇 달 정도 아무도 나를 모르는 새로운 공간에서 지내보면 어떨까 생각하니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고 나서고 싶은 마음에 절로 숨이 가빠졌다.

네팔, 인도, 터키로 여행지를 정해두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내 여행 계획을 들으신 부모님께서는 위험한 여행 경로와 일정에 대해 걱정을 앞세우시며 여행을 반대하셨다. 그러나 부모님의 지원 없이 스스로 벌어 떠나는 여행이었고,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싶다고, 잘해낼 수 있다고 설득한 끝에 결국 부모님께서도 나의 여행을 응원해주시게 되셨다.

내가 여행 출발지를 네팔, 인도로 정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오던 히말라야의 품에 안겨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출발을 앞둔 4일 전, 네팔에 강진이 일어났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그곳의 모습을 담은 뉴스를 보면서도 나는 여행지를 수정할 생각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겪고 그곳에서 내가 거들 수 있는 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지진 피해는 생각보다 심했고 다음 날 카트만두 공항이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행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아직 그 주변 지각이 불안정하니 여행은 다음에 가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지도를 보고 또 보고하며 결국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인도, 터키로 초반 경로를 수정했다. 표를 바꾸고 숙소를 예약하고 한바탕 작업을 하고 보니 어느덧 출국일 하루 전 새벽이었다.

2015429. 그렇게 나는 20kg의 무거운 배낭을 들쳐 메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배낭여행을 시작하기 전, ‘드디어 간다.’는 설렘에 그저 어린아이처럼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막상 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이제부터 혼자인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걱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이제부터는 정말 혼자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 라오스에 도착해서 맡은 내음은 정겨움이었다. 풍겨오는 흙냄새와 풀냄새는 흡사 나의 외할머니댁과 닮아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골의 정취가 긴 여행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었다. 첫 단추를 잘 채운 것 같은 좋은 예감과 함께 여행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라오스와 태국에서 나는 장기 여행자답게 현지인들처럼 입고 먹고 생활하며 지냈다. 낯설었던 향신료 음식들이 점차 입맛에 맞기 시작했고, 느림이 미덕인 이곳에서 답답함을 견디지 못했던 나는 어느덧 그들의 슬로우 라이프에 동화되어 크고 작은 일에도 그러려니 하는 너그러운 여행자가 되어있었다.

동남아를 모두 돌고 난 뒤 향했던 인도는 배낭여행지의 끝판왕이라는 명성답게, 시작부터 어렵고 힘든 난관 투성이었지만 중간중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쿤상형과의 인연이다. 맥그로드 간즈라는 고산 도시로 이동했을 당시, 갑작스럽게 목이 부어올라 여행이 불가능 할 정도로 아파왔다. 현지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영어를 할 줄 모르셨고 나는 답답함에 가슴만 타들어 갔다. 그때 기적같이 쿤상 형이 등장하여 따뜻한 생강차 한 잔을 건네며 통역을 도와줬고, 덕분에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저녁 식사를 제안 드렸고, 우린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쿤상 형은 본인이 티베트인이고 이곳 맥그로드 간즈에서 희망 갤러리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티베트 독립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으로만 봐오던 티베트의 역사와 비극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나는 많은 한국인이 희망 갤러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형을 도와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형과 함께 커피를 만들기도 하고, 티베트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컴퓨터 전공을 살려 희망 갤러리 포스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여행 이상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던 시간이었기에 며칠 뒤 다가온 형과의 헤어짐이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멀리서도 서로의 열정을 응원하자는 약속을 한 뒤 우리는 각자의 길을 따라 헤어지게 되었다.

쿤상 형과 헤어진 이후에는, 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자 꿈이었던 히말라야의 품에 안겼다. 쏟아질 듯한 별빛, 광활한 설산, 떼 지어 다니는 양과 야크. 히말라야는 대자연의 모습 그 자체였다. 현실에서 느낄 수 없었던 대자연을 마주하자 마음속에 밀려오는 뭉클한 감정은 나를 조금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터벅터벅 올라간 끝에 도착한 트리운드라는 장소에서 난 짐을 풀고 야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짜이한 잔에 주위를 둘러 볼 여유가 생겼고, 내가 정말 히말라야에 왔다는 실감을 하게 되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맞은편의 라카고트 빙하(Laka Got)를 바라보노라니 절로 상념에 잠겼다.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가?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주로 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고민은 아니었지만, 뭔가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세계 최고의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큰 포부 하나를 마음에 품으며, 잠자리로 향했다. 밤사이 갑자기 내린 큰비와 천둥에 깜짝 놀라 조마조마했지만 탈 없이 히말라야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터키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했던 경험이었다. 지중해에 있는 도시 페티예는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인데,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은 꿈이 있었고 이번 여행에 패러글라이딩을 꼭 해보리라 생각했었기에 페티예에 도착하자마자 패러글라이딩을 신청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패러글라이딩을 하기로 한 당일 기상 상황이 악화되어 오전에 예정되어 있었던 스케줄이 무한정 미뤄졌다. 아쉽고 화가 났지만 날씨가 점점 좋아져 오후에 고대하던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높은 절벽 위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이 묘하게 섞여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나는 벼랑 끝으로 내달리고 있었고 마침내 발을 디딜 곳이 없는 곳으로 나아간 순간, 내 몸은 이미 하늘을 달리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새파란 지중해 바다는 나를 끌어들일 듯이 반짝였고, 난 그 위를 미끄러지듯 날고 있었다. 만약 운이 나빴다면 보지 못했을, 또 절벽 위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이 감정을 느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마음,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들면서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생각도 잠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지중해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참을 넋 놓고 하늘을 달리며 경치를 감상했다. 그렇게 바다 위를 날다 점점 육지에 가까워져갔고 내 인생의 첫 패러글라이딩은 나에게 환상적인 기억을 남겨주었다. 패러글라이딩이 끝난 뒤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친구들과 금세 가까워졌고 우리는 다 같이 항구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며 술 한잔을 기울였다. 터키, 아르헨티나,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중국, 한국. 서로 인종이나 언어가 달라도 이렇게 좋은 인연이 되어 우정을 나눌 수 있음에 뭉클했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 써두었던 세계 일주라는 소망을 보고 호기롭게 떠난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롭기도 했다처음 라오스에 도착해 쏟아지는 걱정에 잠 못 이루던 밤이 그랬고 육로로 국경을 넘어가다 차가 고장 나, 누워 자던 새벽의 차가운 고속도로가 그랬고 가끔씩 한국이 생각날 때 그랬다. 그러나 혼자 하는 여행은 행복하기도 했다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 멋진 경험을 나눌 때 그랬고해보고 싶었던 것을 결국 이뤄냈을 때 그랬고현지인들과 직접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때 그랬다. 왜 혼자 여행을 했냐고 묻는다면누군가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가 되어 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기분을 맞출 필요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의견 없이 나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배워보고 싶었다. 그저 걷고 싶으면 걷고하고 싶으면 하고먹고 싶으면 먹고쉬고 싶으면 쉬고. 구속 없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가끔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아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소의 일상에 충실하며 살았으리라. 하지만 내가 직접 느낀 감정과 교훈, 또 삶의 에너지는 떠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값진 보물이었다. 남들은 내가 타국의 땅을 밟으며 보낸 시간들을 젊은 날의 사치라 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젊은 날의 가치있는 일이었음을 이제 내가 살아갈 삶으로 증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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