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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학년도 우촌독서대상] 대상 수상작 '냉소의 극복'

등록일 2013년11월12일 00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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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경원 학우(컴퓨터정보처리과 3) 굿바이 미스터 칩스

 

냉소의 극복

 

누군가는 지금을 냉소의 시대로 명명했다. 냉소주의란 대안 없이 현실에 대해 불평만을 늘어놓는 태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아마 누구라도 인터넷을 좀 하다보면 냉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그의 말을 실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럼에도 사이버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그러한 냉소주의를 경험해 본적은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냉소의 시대라고 표현하기엔 인정이 있는 사회라고 생각했고 익명성에 의존하는 인터넷과는 달리 실제 세계에서 자신의 냉소를 드러내는 것은 여간해선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냉소본능을 깨닫고 말았다. 소설의 내용이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속으로 현실이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든 생각에, 나는 나 역시도 이미 냉소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우리는 어느샌가 냉소에 길들여졌다. 이전보다 사회로부터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점차 그런 태도를 객관적이라거나 이성적인 것으로 여기게 됐다. 여기에 누군가 낙관적인 의견을 내놓으면 그것은 허황된, 혹은 현실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들은 마치 습관처럼 비관적인 미래를 예견하고 이에 편승했다. 냉소주의가 주류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사람들 사이에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 포기되고 비관만이 남은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의 냉소적인 부분을 자각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낙관적인 믿음의 상실을 사회에 대한 불신, 타인에 대한 불신,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불신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책을 통해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는 비관주의가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마치 초상집에는 우는 얼굴이 어울리고 결혼식에는 웃는 얼굴이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했다간 입장이 몹시 난처해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배우자의 찡그린 표정을 지적한다면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라는 면박을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웃을 일이 있어야지 웃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비관적이라고 해서 꼭 우는 얼굴을 해야 하는 것일까.

소설에는 수업 중 독일군의 공습으로 사방에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까딱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절망이 학생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칩스는 태연한 얼굴로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 심지어 여유롭게 농담까지 하면서.

감정은 전염된다. 만약 그마저 두려워했다면 학생들의 불안함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는 대신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학생들을 진정시키려고 한 것이다. 특유의 유머러스한 태도에 학생들 역시 그의 농담에 대꾸할 만큼 여유를 되찾는다.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의 낙관적인 전망은 그것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상황이라도 결과는 비관적일 수 있지만, 낙관적일 수도 있다. 칩스는 비관이 결코 최선이 될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칩스는 재치 있는 말재주를 가진 노인으로 묘사되지만 젊었을 때는 그리 유머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학생들에게 엄격하고 무미건조한 성격의 중년 교사였다. 학생들은 그의 말에 복종하고 존경하였으나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캐서린과의 결혼은 그의 이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사랑을 통해 그는 쾌활하게 변했고 농담을 즐기게 됐다. 그 결과 그는 학생들의 사랑까지 얻게 됐다. 캐서린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애정은 칩스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캐서린이 죽은 뒤 이제 브룩클린에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칩스만이 유일했지만 오래 전에 그녀가 베풀었던 호의를 여전히 기억하는 소년에게서 칩스는 감동을 느낀다. 오래 전 그녀가 베풀었던 사랑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인에게 마음을 내주는 것에 인색해질 때가 많다. 나에게 이득이 될 것 같은 사람에게는 호의적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상대에겐 쉽게 무심해진다. 지금 시대에 착한 사람은 오히려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고 심지어 이용하려 들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람에 대해 회의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됐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 입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필요한 것은 사람은 사람에 의해 치유되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칩스에게 자식이 없음을 동정하는 말에 그는 온힘을 다해 대답한다. 자신에게는 수천 명의 아이들이 있었노라고. 그에게는 그가 일생동안 만났던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아이와 같았다. 아내와 아이를 잃은 칩스의 상처는 그렇게 사람을 통해 치유돼 온 것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단지 받는 것뿐만 아니라 주는 것으로도 위안이 되고 삶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서 나는 문득문득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그것은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의 앞으로의 삶이 좌우될 것 같은, 마치 그로 인해 내 행복이 결정될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그런 조급함에 가끔은 왜 나는 남들보다 더 뛰어나지 않는지, 왜 더 많이 갖지 못했는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정작 나는 내가 무엇으로 행복한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기준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에 사로잡히게 되면 사람은 쉽게 불행해 진다.

칩스는 매우 평범한 인물이다. 그 스스로가 말하듯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교수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으며 가진 재산이 많다거나 배경이 든든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사회 초년생 때는 으레 그렇듯 야심만만했으나 실패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그리 특출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곧 그것에 만족하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살아가다보면 수많은 선택을 하고 때로는 실패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실패의 경험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고 당시에 나는 그 일을 회피하려고만 했었다. 그러나 사실 이후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째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지, 찜찜한 후회가 드는 것이다. 당시엔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 같았지만 그것도 지나고 보면 별 게 아니었다.

나는 칩스가 교직에 있으면서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직무를 하찮게 여기거나 게을리 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십 여년을 꼬박 직무에 종사했고 스스로 책무를 다해왔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어려우리라고 여겼을 때 비로소 교단에서 내려왔다. 캐서린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나듯 그는 교직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그것은 또 다른 도전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사람은 성장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다. 무엇을 경험하든 그것을 받아들이고 만족하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사회에 진출하기 직전 큰 꿈에 부풀어 있는 내 또래들에게 만족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그저 현실에의 안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실패에 좌절하지 않기 위함이다. 실패에 직면했을 때 그럼에도 그것에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다. 우리는 때로 그 평범함에, 특별하지 않음에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평범함이 우리의 삶의 빛깔마저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관점에 달려있다. 칩스의 삶은 마치 아주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일상에서 냉소를 마주할 때가 있다.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냉소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때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하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실망에 의하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나 자신에 의하기도 한다. 종종 비관에 빠지는 나에게 이 소설은 냉소를 극복해 나갈 희망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삶을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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