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교수 (그래픽아츠과)
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해외 세미나 한·일출판문화 포럼 등 공식일정을 마친 지난 6월 어느날, 나가노현의 가미고치(上高地) 탐방에 나섰다.
시오리지(塩尻)에서 가미고치까지는 버스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가는 길따라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진다. 차창 밖으로 멀리 일본 알프스의 높은 산에 만년설이 보인다. 왜 일본에도 알프스가 있을까?
메이지시대에 들어와서 근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메이지 정부는 많은 외국인 기술자를 고용했다. 그중 한 사람인 영국의 야금 기술자 윌리엄 가울랜드는 1887년 7월 야리가다케(槍ケ岳)에 올라 유럽의 알프스와 비슷하다는 기록을 잡지에 투고하였다. 그 안에 ‘Japan Alps’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오늘날 일본 알프스라고 부른다.
우리 일행은 깊은 숲속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가미고치로 향했다. 3개의 댐을 지나 가미고치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자가용 차량은 구경할 수가 없었다. 일본 정부는 가미고치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 차량의 진입을 불가능하게 하고 버스와 택시로만 이동 가능케 했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가미고치의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일단 가파바시(河童橋) 다리가 보였다. 가파바시에서 바라본 북알프스의 설산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3,000m 이상의 산에서, 한여름에 만년설을 볼 수 있다니. 우리나라에서는 만년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1915년 야케다케(燒岳)의 분화로 광대한 토사가 생겨났다. 그로 인해 빠른 속도로 이즈사와강이 막혀 버렸고, 이곳에 다이쇼케의 호수가 생성되었다. 호수에 잠겨 고사한 나무는 줄기만 남아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났지만, 주위의 배경과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트레킹코스는 전체가 16km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 일행은 2.5km 안내판까지만 트레킹을 하고 오후 일정이 있어 다시 가파바시로 되돌아왔다.
국립공원을 사람의 자취가 묻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일본 정부에 감탄했다. 트레킹 도중 아무리 살펴봐도 쓰레기 하나 볼 수가 없었다. 만나는 일본인마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네는데 친절하기가 그지없다.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의 복장은 간편하고 수수하다.
나는 잠시 우리의 처지와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젊은이들은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좋은 옷을 입고 사치하고 다니는 것을 자긍심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근무복이나 우중충한 평상복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크고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그들은 부유해도 20평 정도의 집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우리는 크고 비싼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그들은 자전거와 전철을 타고 다니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과 영원히 마주 보고 살아야 한다.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일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최고가 될 수 없다. 일본인의 준비성, 철저함, 끈기, 집념 등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 그들은 뭐든지 손댔다 하면 끝까지 섬세하고 완벽하게 해내기에 ‘대강 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일본인과 경쟁하겠는가? 우리도 변해야 한다. 일본을 배척하지 말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들보다 우수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한가지 장인 정신과 그 문화에 뒤지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우리가 당한 아픔을 뼛속 깊이 새겨 두 번 다시 그런 아픔을 겪지 않으려 절치부심해야 한다. 과거에 매달려 봐야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본을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