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雪國)」은 1968년에 저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 家成)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중편 소설이다. 이것은 일본 최초이자 동양에서 두 번째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토록 영광스러운 수식어에 혹해 흥미를 갖는다면 작품에 대한 실례다. ‘설국’이라는 배경의 아름다움이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로 표현돼서 드러나는 서정성이야말로 이 작품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다.
「설국」은 여러 남녀의 사랑과 엇갈린 관계를 다루고 있다. 부모에게 상속받은 유산으로 한량처럼 살던 무용연구가 시마무라는 여행과 등산을 자주 다녔다. 여행 중에 방문하게 된 많은 눈이 내리는 마을, 설국에서 춤 선생 집의 여자 고마코를 만난다. 그는 고마코에게 점차 마음을 쏟게 되지만 마을을 떠난다. 일 년 후 고마코를 다시 만나기 위해 설국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또 다른 여자 요코와 요코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한 남자를 마주한다. 그리고 고마코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가진 요코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고마코에게 받은 열정적인 사랑과 달리 유코의 청순하고 신비로운 느낌에 끌린 것이다. 한편 고마코는 춤 선생의 아픈 아들이자 시마무라가 기차에서 마주했던 남자, 유키오를 위해 게이샤가 된다. 그러던 중 유키오는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되는데 고마코를 그리워하며 요코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1년 뒤 시마무라는 다시 고마코를 찾아 설국에 방문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또한 유키오가 죽으면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던 요코는 화재사고로 2층에서 떨어져 죽는다.
두드러지는 부분이 없고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표현되지 않는 줄거리나 다소 심심한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 등의 요소 때문에 단순히 글을 따라 눈을 움직인 독자라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단순히 무엇을 표현했나를 쫓기보다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설국」을 읽는 진정한 방법이다.
이 작품을 읽어보면 ‘헛수고’, ‘허무’라는 단어를 참 많이 보게 된다. 시마무라가 고마코가 꾸준히 일기와 독서노트를 기록하지만 그 행위 속에 확실한 목표가 있지 않은 것을 보고 헛수고라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허무는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분명히 사랑하는 여인에게 온전히 사랑을 주지 못하는 시마무라의 내면이 그러하다. 이처럼 곳곳에 표현된 허무는 「설국」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허무’ 사이의 조화야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던 것이기 때문이다.
허무함이 만연한 가운데 설국이라는 배경의 아름다움과 인물들의 심리를 한데 어울려 몽환적인 분위기와 여운을 남기게 한 것은 눈 내리는 마을의 풍경을 가와바타 야스나리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미를 추구하려는 문체가 한 몫 한다. 실제로 12년이나 걸려 완성된 이 작품은 작가의 미의식을 최고조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평가된다. 또한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시상 당시 “자연과 인간에게 존재하는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며 시상사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설국」의 첫 문장은 일본에 첫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세 문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작가의 섬세한 언어 감각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김경아 기자 rlaruddk9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