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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신구학술문학상 입선작] 숨 - 오주영(비즈니스중국어과)

등록일 2015년12월07일 14시36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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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기운이 가득한 금요일 밤 지하철,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넘치는 속을 참지 못하고 이내 토악질을 하듯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온다. 일주일의 고된 여정을 표현하듯이 금요일 저녁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힘이 없다. 그날도 나는 분명히 어김없는 각양각색 그 색깔들의 틈바구니에 껴 이리 저리 치이듯 역을 나오는 길이였다. 하루를 생각하니 뭐 언제나 그랬듯이 특별할 것도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는 평범함 그 자체의 날이다. 의미 없는 하루가 흘러가듯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꼬리는 그래도 계속 흘러간다. 그런데 왜였을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그러니까 매일 보던 이 그림, 내 앞뒤로 걷는 사람들 모두 역출입구로 나가는 모습은, 모르겠다. 왜였는지 그냥 나방이 불에 빨려 들어가는 듯 한 모습 이였다. 마치 그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순환의 고리 속에 메어 있는 것만 같았고,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그 모습을 표현하듯이 날숨에는 괴롭다는 투정 섞인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내쉬는 숨소리도 그런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또각 또각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 딛는 발걸음 그리고 그에 맞춰 열을 맞춘 듯 내쉬고 들이마시는 ’, 나의 도 이 순환에 그 발을 맞추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두려웠다.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늪, 이제 막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매단 나에게 성인이란 것은 그래, 끝없이 잠기는 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인식한 후로 매번 다를 것 없었던 그 역속이 분명 달랐다. 그것은 매번 보던 거울 속 나의 얼굴이 나를 반기지 않는 듯 하는 소름끼치면서도 찬물을 끼얹은 듯 내 정신 한구석을 움찔 거리게 하는 그런 느낌 이다.

성인내가 아직 그 이름표를 받기 이전에 나는 그 이름표를 매다는 그 순간이 무척이나 기다려졌고 또 원했다. 그래서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번식을 한 뒤 죽을 줄 알면서도 날아오르는 수컷개미의 본능 이였음을. 나를 나로 하여금 스스로의 방안에 가두는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열아홉에서 많이 더한 것도 아닌 단지 제일 작은 그 일을 더했을 뿐인데 아직 크지도 바뀌지도 않은 나에게 많은 것이 달라져 버린 세상은 무조건적인 변화변태를 요구한다. 분명 내가 생각한 내 나이 스물은 이게 아니였다고 확신 할 수 있다. 그래, 나는 나의 이 스물이 뭔가 특별할 것만 같았다. 긴 하루의 시간이 끝나 갈 때면, 괴로움 섞인 날숨이아니라 하루 끝을 알리는 붉은 노을을 보며 그 보다 더 붉게 타는 열정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해가 진 뒤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 볼 때면 빛이 보이지 않아 밑을 보기보다 그 어두운 도화지에 내가 가득 별빛을 수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은 스물이라는 그 시작점에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어둡기만 한 동굴로 들어가는 것 같다. ‘과연 저 곳으로 들어가면 빛을 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물음만 동굴 속에 메아리 칠 뿐이다.

비단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겠지. 모든 스물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당신의 스물은 어떠한가? 매번 다를 것 없이 누군가는 학교를 가고 누군가는 일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간다. 서로가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감성으로 저마다의 스물을 소비한다. ‘그런데 정말 이것은 지금 내가, 아니 우리가 보내는 이시간이 소비가 되는 건가?’ 역출입구 계단에 잠깐 기대어 올라가는 사람들을 살핀다. 그들은 과연 지금 자신들의 딱 지금이순간의 를 소비하는 건가? 계단 벽면에 기대어 있는 등이 뻐근해질 때 쯤 저 멀리 이제 막 교통카드를 찍고 올라오는 한 아주머니가 보인다. 오십대가 넘었을까? 무심코 듣게 된 그 아주머니의 통화 내용이 인상 깊다.

지금 이렇게 시간 소비하고 있을 거야? 다른 애들은 다 스펙 챙기려고 난린데 이제 스물이면 너도 어른답게 미래 준비해야지.”

자신의 자녀를 책망하는 듯 한 그 말은 왜일까?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히다 못해 파고들어서 그 주변마저 헤집어 두는 것 같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우리의 스물이 소비로 표현 되어야 하고 뛰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레이스가 된 것인가? 정말 그 의구심에 물어보고 싶었다.

왜 언제부터 스물이, 성인이란 것이 레이스에 참가하지 않으면 어른이 아닌 거죠?”

결국은 내 목구멍 그 아래에서 울릴 뿐 이였으나, 한번 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지금의 스물은 사실 경쟁만을 강요받던 그 시기에서 겨우겨우 벗어난 때이다. 나 역시 겪었듯 마치 고기에 품질을 정하는 것처럼 등급을 매기던, 우리는 더 우수한 등급을 받고자 몸부림치던 가녀린 영혼들이였다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단 일 년, 아니 하루 차이로, 달력의 그 한 장차이로 세상은 또 한 번 너무 많은 짐을 지어주려 한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나의 스물 참 뭐가 없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가슴 가득 품었던 환상과 꿈은 하늘위의 구름처럼 한 번의 바람에 흩어져 버린다.

그런 내 마음처럼 많던 사람들도 달이 그 빛을 더해갈수록 점차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더 서있었을까. 마침 다리에 쥐가 나려 할 때쯤 막차시간임을 알려 나의 발끝은 어느새 계단 그 위를 향하고 있다. 그때, 그러니까 그때 그 순간은 별일 아닌 듯 무심하게 내 두 눈을 꽉 사로잡았다. ‘탁 타다닥빠르게 계단을 뛰어오르는 한 그림자에 내 눈은 고정이 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흔히 볼 수 있는 운동화 흔히 메고 다니는 가방 그리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입는 교복. 그 교복은 나를 영혼 저 깊숙한 하부부터의 떨림을 더욱 가속 시켰다. 그것은 왜였을까? 지금도 나 자신에게 그때 그 기억을 되묻는 다면 그 떨림이 왜 그리 강하게 또 오래 지속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그 속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본 것만 같다. 학원인지 학교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공부를 하고 막차를 내린 저 모습 길지 않은 과거의 나다. 사실 그 학생이 어떤 나이였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고등학교 때가 그랬을까? 학생의 표정에는 힘들고 지치고 화도 나고 심술이 잔뜩 붙은...., 이내 내 얼굴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과는 반대로 자그마한 웃음이 걸렸다. 얼마 전의 내 모습이 저러 했던가. 왜 저 모습은 이리 예뻐 보일까. 내가 그때의 나였을 때 는 나보다 어른들의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복입은 모습이 제일 이쁘다.”

그런데 지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교복을 입은 그 모습이 예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어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마치 내가 교복을 입고 있는 듯 그 순간의 나도 잠깐이지만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것 같았다.

이것일까? 흔히들 말하는 스물이 아름답다는 이유가. 아직도 나는 많은 것을 강요받는 이 스물이 밉고 무섭고 두렵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는 나의 스물 속에서 그 자신의 스물을 엿볼 수 있음에 이 감정들을 피하고 싶지 않다. 그 때문에 온전히 스물을 갖고 있는 우리는 가장 좋을 때라고 불리 우는 것일까. 이제는 달리는 동굴 속에서 눈이 적응을 해가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 동굴 속에서 빛을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 동굴 속의 시간은 나에게 그저 어둠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둠속에서도 눈은 충분히 적응해 가득한 빛 속에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처음엔 나를 힘들게 지치게 하지만 결국 그만큼 나에게 솔직한 것도, 가장 나다운 것도 없다. 더 이상 나의 도 다급 하지 않다. 특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이시간이 무척이나 평범해서 심해 저 깊숙하게 가라앉는 것만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 너도 나도 특별하지 않음이, 무언가 새롭고 다름이 있지 않음이, 힘들고 지치게만 함이 이토록 특별하다는 것은 지하철출구로 이어졌던 그 긴 행렬의 꼬리는 알고 있었음인가? 이제는 그들이 더 이상 불속에 달려드는 나방 같지 않다. 힘들고 지친 숨은 같으나 이젠 그 속에서 아버지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꿈이 보인다. 누군가에게 나의 도 그리 보였을까? ‘탁 텁 탁 텁이내 출구로 나오자 여름밤의 따뜻한 바람이 나를 반기는 듯 하다. 나는 왜 그리 조바심을 내고 왜 그렇게 잡히지 않는 저 구름에 욕심을 냈더란 말인가. 내 욕심과 어딘가를 향한 비판을 비웃듯 발아래 힘차게 움직이는 개미들이 보인다. 지금 나의 스물이 시간이 지나 누군가의 스물이 되겠지. 정말 슬픈 것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고리 속에 포함되어지는 것만 같은 나 자신이 아니라 지금 그 속의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함이 아닌가? 여름 밤 하늘 그런 나의 고뇌와 생각을 알리듯 사람들의 은 저마다의 시간과 기억을 갖고 어두운 도화지를 하나 둘 수놓는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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