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비가 내리지 않아 그 어느 해보다 더욱 무더웠던 올해 여름.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히말라야 등반을 이루기 위해 인도 북부의 맥그로드 간즈라는 곳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처음 인도라는 국가를 배낭여행지로 선정하였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걱정 섞인 목소리로 “왜 꼭 인도냐”고 했다. 인도라는 키워드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강간, 범죄, 살인 등 안 좋은 뉴스들이 많았고, 실제 인도를 여행하고 나서 사기를 당했다는 후기들도 수두룩하게 많았다. 나 역시 이런 정보들을 접하고 난 뒤 두렵고 무서웠지만,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는 지금의 기회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호기로움이 나로 하여금 인도 여행을 더욱 꼼꼼하고 세밀하게 준비하도록 만들었고, 몇 달 후 나는 드디어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실제로 도착한 인도의 첫인상은 ‘배낭여행지의 끝판왕’이라는 명성답게, 시작부터 어렵고 힘든 난관투성이었다. 48도라는 경이로운 더위, 복잡하고 미로같은 길들, 길거리와 차도를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소들, 수많은 사기꾼 등 많은 요소들이 나에게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인도의 젖줄 갠지스 강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 등 주요 관광지를 방문하고 난 뒤, 나는 치솟는 더위를 피해 도망치듯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맥그로드 간즈라는 고산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급하게 도착한 고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아파와 결국 현지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영어를 할 줄 모르셨고 나는 답답함에 가슴만 타들어 갔다. 그때 기적같이 쿤상 형이 등장했다. 쿤상 형은 나에게 따뜻한 생강차 한 잔을 건네며 통역을 도와줬고, 덕분에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저녁 식사를 제안 드렸고, 우린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쿤상 형은 본인이 티베트인이고 이곳 맥그로드 간즈에서 ‘희망 갤러리’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티베트 독립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으로만 봐오던 티베트의 역사와 비극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나는 많은 한국인이 희망 갤러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형을 도와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나는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희망 갤러리로 나가 형과 함께 커피와 차를 만들기도 하고, 컴퓨터 전공 실력을 살려 희망 갤러리 포스터와 엽서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또 티베트 사원에 방문하여 교육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티베트 어린아이들에게 외국인 선생님이 되어 영어 알파벳을 가르쳐주었다. 여행까지 와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과 같은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 어떤 경험보다도 더 보람찬 경험이었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그렇게 5일이라는 시간이 희망 갤러리와 함께 쏜살같이 지나갔다.
누군가는 ‘본인 돈 주고 간 여행인데 시간 아깝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분명 여행 전에는 봉사활동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아니에요. 도리어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었는걸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여행 이상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던 5일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어떤 인종이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베푸는 것은 삶의 행복을 배가시켜준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배웠다. 쿤상 형, 그리고 티베트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 나에게는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게 그 증거일 것이다.
쿤상 형과 티베트 아이들과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희망 갤러리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은 늦은 새벽 히말라야 설산에서 쏟아지던 그 별빛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가슴 속에 기억될 보석 같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