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교수(토목과)
토목기술자(Civil Engineers)들이 만든 다리는 편리성이 주는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여행을 하면서, 음악·미술·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또 다른 문화적 가치를 선사한다.
칠월 칠석이면 수많은 까마귀들이 날아와 은하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준다는 설화 속의 오작교처럼, 토목기술자가 과학기술로 만드는 다리의 기능적인 역할은 ‘연결’이다. 길을 이어주는 다리는 우리에게 ‘만남’, ‘소통’, ‘교감’, ‘상징’의 의미를 갖고 있다.
국내 최초의 도개교(배가 지나갈 수 있게 다리의 한 쪽 또는 양쪽이 들리게 된 구조의 다리)이자 부산의 상징인 영도대교는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든 수많은 피란민들이 헤어진 가족들을 찾기 위해 모이는 우리나라 1호 만남의 장소였다.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이 영도대교에 얽힌 피란민의 애환을 담은 대중가요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봄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이 노래는 그 당시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세월이 흘러 옛날의 영도대교는 헐리고 새로운 영도대교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전국 유일의 영도다리 축제가 거듭되면서 우리나라 근대사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가 되었다. 관광객들이 영도다리의 도개 행사를 보려고 모여들고 있다. 다리의 모습은 변하였으나 상징의 ‘영도대교’는 계속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문화유산으로 살아있다.
올해 우리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다. 자이언티의 아버지가 실제로 택시기사셨는데 전화하면 항상 양화대교를 건너고 있다고 하셨단다. ‘우리 집에는/매일 나 홀로 있었지/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양화대교” (중략) ‘전화가 오네, 내 어머니네/뚜루루루 “아들 잘 지내니”/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나 양화대교 “양화대교”/엄마 행복하자/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행복하자 행복하자/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가난하고 힘들었던 가정에 태어난 자이언티는 이 곡을 발표하고 “양화대교는 아버지를 뜻한다. 어느 날 문득 제가 가장이 된 것을 깨달았을 때, 노래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걸어간 가장이란 길을 이어받아 같은 위치에 서서 느낀 가족의 얘기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양화대교는 자이언티가 어릴 때 받았던 사랑의 상징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으로 전달된다.
서울 한강에 놓였던 예전의 양화대교는 우여곡절을 겪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토목기술자들이 만든 양화대교는 문명의 발달로 변하지만, 자이언티와 우리에게 상징으로서의 ‘양화대교’는 지금 살아 재창조되고 있다. 물질적 가치를 초월하여 정서적·예술적 감동이 주는 다리의 가치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으리라 본다.
사이몬(Simon)의 곡에 가펑클(Garfunkel)이 부른 팝송 ‘A bridge over troubled water(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에서 ‘다리’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When darkness comes/And pain is all around/A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I will lay me down’의 가사처럼 내가 살기 힘든 세상에 직접 다리가 되어 주진 못하지만, 시민을 위해 안전한 다리를 만드는 ‘Civil Engineer’가 되자고! 끔찍했던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다시는 재발치 않도록 ‘작품’같은 다리를 만들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