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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6년04월08일 17시01분 ]

오트 쿠튀르? TV에서 모델들, 디자이너들이 말하던 것 같다. 들어본 단어지만 무슨 뜻인지 모른다. 오트 쿠튀르에 관해 묻거든 적지 않은 사람이 답할 말들이다. ‘Fashion’은 가깝다가도 멀게 느껴지는 단어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열리는 작은 패션쇼, 캠퍼스의 주인공이 되다가도, 간혹 세계적인 패션쇼들에서 보이는 난해한 모습에 나와는 먼 얘기라며 관심을 거두기도 하니까 말이다. 지금부터 알고 보면 어렵지 않을 패션, ‘오트 쿠튀르에 다가가 보자.


나만을 위한 옷,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오늘날 오트 쿠튀르는 디자이너들이 각 브랜드가 가진 장인정신과 예술성을 뽐내는, 일명 하이패션을 선보이는 쇼를 지칭한다. 한 번쯤 쇼를 보고 저런 옷을 누가 입어?’라고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런 쇼들의 대부분은 판매가 아닌 디자이너의 예술성을 기반에 둔 쇼였을 것이리라.

패션쇼개념의 오트 쿠튀르는 1868년에 시작됐다.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는 본래 고급 의상점의 여성 맞춤 제작 의상을 뜻하는데,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킨 옷을 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디자이너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새로운 의상을 디자인하거나 유행을 이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디자이너, 찰스 워스가 최초로 자신의 옷을 만들어 모델에게 입혀 선보이며 브랜드화하고, Spring/Summer, Fall/Winter 컬렉션을 선보이는 패션쇼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금까지도 거장이라 손꼽히는 코코 샤넬, 크리스챤 디올, 이브 생 로랑 등 역시 오트 쿠튀르의 첫 걸음을 내디딘 디자이너들이다.


Ready to Wear, 프레타 포르테(Pret a Porter)

오트 쿠튀르와 상반되는 개념의 패션쇼가 있다. 바로 프레타 포르테다. 프레타 포르테는 오트 쿠튀르 쇼에서 보여준 콘셉트를 유지하되 판매를 위한 대중성 있는 옷을 선보이는 쇼를 말한다.

고급 제작복을 뜻하던 과거의 오트 쿠튀르는 값이 매우 비쌌다. 오늘날에도 오트 쿠튀르쇼의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고객은 전 세계 단 200여 명의 중동부호나 왕족들뿐이라고 하니 당시엔 어떠했겠는가. 평민들은 고급 기성복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타난 것이 프레타 포르테(Pret a Porter)’. 프레타 포르테란 준비를 뜻하는 프레(pret)’입다를 뜻하는 아 포르테(a porter)’가 합쳐진 불어로, 고급 기성복을 뜻한다.


오트 쿠튀르와 프레타 포르테, 그렇다면 이 두 곳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여기엔 흥미로운 가입요건이 있다. 먼저 오트 쿠튀르는 파리의상점 조합사무국(La Chambre Syndicals de la Couture Parisienne)에 속해 있는데, 디자이너의 작업실이 파리에 있고, 치프(Chief)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한 의상을 75점 이상 발표하며 20명 이상의 팀원이 구성돼 있어야 한다. 또한 3명 이상의 전속 모델을 보유하고 1년에 2S/S, F/W 시즌에 기자들 앞에서 컬렉션을 개최해야 한다. 앞서 말한 디자이너들을 비롯해 피에르 가르뎅, 위베르 드 지방시 등은 모두 오트 쿠튀르의 대표 디자이너들이다. 명확한 주최자가 있고 디자이너도 엄격하게 제한된 오트 쿠튀르에 비해 프레타 포르테는 자유롭게 열리며 대표적인 디자이너는 캘빈 클라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톰 포드 등이 있다.



오트 쿠튀르 황금기 속의 디올

1950년대는 오트 쿠튀르의 황금기였다고 일컬어진다. 그 배경에는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이 있다.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딱딱해진 분위기의 디자인과 당대 파리 패션을 이끌던 코코 샤넬이 은퇴한 빈자리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 바로 디올이었다. 디올은 1947년 첫 번째 컬렉션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의 뉴룩(New Look)’을 선보였다. 좁고 부드럽게 경사진 형태의 어깨선과 코르셋을 착용해 가늘게 조인 허리선, 풍성한 느낌의 무릎 아래까지 오는 곡선형 스커트, 마지막으로 화려한 디자인의 모자가 바로 그것인데, 단조롭고 칙칙하던 패션에 질려있던 여성들에게 곡선의 미를 강조하고 세련미를 찾던 디올의 판타지는 센세이션이었다. 이후 그는 지그재그, 튤립, H라인 등의 실루엣 이름을 붙인 의상들을 속속 선보이며 현대의복사에 큰 획을 그었다. 당시 거장의 자리에 있던 디올은 이런 말을 했다. “오트 쿠튀르는 현대 여성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합니다.” 이것은 관능적인 매력이 가장 최고의 미였던 1950년대 패션을 단 한 마디로 설명하는 완전한 말이 아닐까.

김경아 기자 rlaruddk9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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