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한강/문학과 지성사
「바람이 분다, 가라」는 작가 한강이 제13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하게 해준 작품이다. 4년에 걸쳐 쓰인 네 번째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작가가 특히나 애정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지인의 주치의로부터 의식이 없던 환자가 갑자기 숨을 쉴 때, 인공호흡기의 공기와 환자의 숨이 충돌해 생사를 논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듣고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다. 글을 써내려가는 내내 작가 본인도 위급한 상황에 놓인 듯, 격렬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속엔 인간이 가진 격렬하고 첨예한 감정이 잘 녹아있다.
죽음을 좇다
작품은 화자인 이정희에 의해 전개된다.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자신이 그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짝, 서인주는 육상선수였다. 그러나 인주는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곧 촉망받는 화가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의문의 죽음을 맞고야 만다. 이때, 미술 평론가인 강석원은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 짓고 그녀를 신화화하려는 자서전을 펴내려 한다. 정희도 그녀의 사인을 담은 책을 펴내려 하는데, 석원에 반해 자동차 사고였음을 주장한다. 정희는 인주가 남긴 어린 딸이 엄마가 자살했다는 거짓된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을 때 받을 충격을 걱정해 석원의 책을 저지하기 위해 그를 찾고, 인주의 행적을 좇는다. 그 과정에서 인주의 삶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조각가 김영신, 심리 상담사 류인섭, 그리고 인주의 삼촌 이동주 등을 만난다.
정희는 인주의 그림 속 검은 선들을 보며 무한을 생각하고, 접점을 보며 부재를 떠올렸다. 자신이 인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깨졌다. 인주의 삶이 가진 부재는 되풀이된 사고일지도 모른다. 40년 전, 인주의 모친 역시 인주가 자동차 사고를 겪었다고 생각하는 그곳에서 같은 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희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인주와 그녀의 가족이 가진 비극적 진실을 밝히려 한다. 이처럼 작품에서는 죽음에서 비롯된 다양한 인간 형상이 가진 감정의 동요, 그리고 등장인물 간의 연쇄적 인연이 펼쳐진다.
정체성을 부순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어보면 마치 과학소설 같다. 삶의 행적을 천체물리학의 여러 이론에 빗댄 모습이 그러하다. ‘마그마의 바다’, ‘달의 뒷면’ 등 10개의 장으로 나뉜 차례만 보더라도 천체물리학이 가미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추리소설 같기도 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몇 가지 키워드는 독자를 단서를 찾아 추리해내는 탐정으로 변하게 한다. 키워드 중 하나인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인생을 알고 보면 인주의 삶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소설이 아닌 시나 편지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한강의 문체는 정형화된 소설의 특징을 깨부쉈다. 이 소설은 큰따옴표로 묶어진 대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인물은 대화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시점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소설 속에 더욱 녹아든다. ‘죽음’이라는 다소 무겁고, 무서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부드럽고 환상 같은 묘사는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한강
한강의 소설은 차갑고, 고독하고, 슬프다는 느낌이 든다. 으레 한국문학이 가진 애환이 작가만의 방식으로 작품 속에 녹아있다. 인물과 배경을 마치 흘러가는 구름처럼 묘사하면서 현대 삶이 가진 맹점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멘부커(Man Booker) 상을 안겨준 「채식주의자」에서는 직접적인 타격이 아님에도 이루어지는 폭력을 채식에 투영해 질문했고, 「소년이 온다」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 속 소년의 모습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돌이켜 주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등장인물이 정희의 인생을 뒤따라가며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등장인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견디기 힘든 이 세계를 살아낼 수 있는가,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이것은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으로까지 이어진다. 삶의 당위를 고뇌하는 사이 우리는 책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질문을 던지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아 기자 rlaruddk9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