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응식 교수(시각디자인과)
어느 집에는 한 마리의 새가 살았다. 새장의 모양도 새의 종류도 같았다. 그래서 두 개의 새장은 서로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가까이 가 보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새장은 우선 깨끗했다. 새의 모습도 밝았다. 사람이 다가가면 반갑게 소리 내어 맞아주었으며, 문을 열고 먹이를 넣어 줄 때도 주인의 손에 귀엽게 입맞춤을 할 뿐 밖으로 뛰쳐나가려거나 주인의 손을 쪼는 등 주인의 마음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주인은 그 새가 사랑스러웠다. 그에 비해 두 번째 새장은 더러웠다. 창살은 할퀴어져 군데군데 색이 벗겨져 있었으며, 휘어진 몇 개의 창살에는 깃털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바닥에도 떨어진 깃털과 응고된 핏방울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새는 깃털이 빠져 볼품이 없었으며, 깃털이 빠진 그 자리에 생긴 상처는 새를 더욱 흉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새 주인은 말했다. 두 번째 새장의 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처음에는 같은 새장에 두 마리가 살았다. 어느 날 주인이 새장에 먹이를 넣어주려 새장의 문을 밀어 올렸을 때, 갑자기 지금 두 번째 새장에 있는 새가 바깥으로 나가려고 후다닥 날갯짓을 하였다. 주인은 놀라 엉겁결에 빠져나가는 새를 움켜잡았다. 주인도 놀랐지만 그 새는 더 놀랐다. 그 때까지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이다. 주인은 새가 도망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고, 새는 주인이 새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뿐만 아니라 새는 새장의 창살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금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 창살이 새의 힘으로는 휘기 어려운 단단한 것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더 이상 주인은 자기를 위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구속하고, 감금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보살펴 준 것도 주인 자신을 위한 것이라도 것도 알게 되었다. 새장은 이제 감옥이었으며 형틀이었다.
참 이상했다. 두 번째 새는 그동안 바깥을 보지 못했다. 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바라보는 사랑스런 주인의 눈빛과 먹이를 넣어주는 그의 손뿐이었다. 그 눈빛과 손은 늘 새장 안으로 들어왔으므로 그것은 새장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인이 먹이를 넣어주러 새장의 문을 열었을 때, 어떻게 창밖의 하늘이 눈에 들어 왔을까. 그것은 창으로 나눠진 사각형 조각하늘이 아니라 광대한 우주였으며, 그를 있게 한 최초의 시간으로 가는 입구였다. 그리고 그 창은 처음으로 그 자신을 볼 수 있게 한 거울이 되었다.
그의 날개는 작지 않았으며, 눈은 빛났다. 무언가 움켜잡을 수 있는 발톱이 길게 나 있었고, 부리는 날카롭게 휘어져 있었다. 그동안 이것을 온전히 사용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을 본 순간은 경이로웠다. 다시 태어남이었다. 세상도 그 자신 속에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어쩌다 여기 살게 되었는가. 언제부터 여기 살게 되었을까.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주인은 누구인가, 왜 나를 그동안 보살펴 주었는가. 그러면서 나를 가두고 있는가. 이곳을 나가면 무엇이 있는가. 나는 어디까지 날아 갈 수 있는가.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 나와 같은 모습의 새들이 있을까. 과연 이 곳을 나가서 살 수 있을까. 밤이 되면 전에 없던 두려움과 함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이 밀려왔다.
지금까지는 집안에 함께 살고 있는 모두가 자기를 위해주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아침마다 새들이 마루에 떨어뜨린 털과 모이부스러기를 쓸었으며, 주인 아저씨는 새장의 물을 갈아주고 배설물을 치워주었다. 그리고 개는 집을 지켰으며,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는 것을 새들에게 알려 주었다. 모두들 서로를 위해 맡은 바 일을 했으나 새들은 하는 일 없이 먹고 놀았다. 그래서 새들은 늘 주인에게 미안했고, 주인이 고마웠다. 그런데 오늘 주인은 밖을 나가려든 그를 움켜잡았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폭력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의 옥죄임이 아니라 내 존재의 모든 것이 그의 손아귀에 있다는 선포였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옆의 새처럼 다소곳이 있으면서 주인의 사랑을 구할 것인가, 미지의 저 창공으로 솟아오를 것인가.
그날 이후 두 마리 새 사이에는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첫 번째 새장에 있는 새는 그동안 아무 일없이 자기와 똑같이 지내던 다른 새가 왜 주인이 먹이를 주러 문을 열기만 하면 뛰쳐나가려고 주인의 손을 사납게 쪼아대는지,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창살에 몸을 던지고 그 상처로 괴로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늘 주인이 고마웠다. 주인이 문을 열 때면 오히려 자기를 새장 밖으로 내 보내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종종 일어났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 그에게 올 수 있는 가장 큰 공포였다. 그래서 그는 주인이 새장이 있는 마루로 나오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 가다듬어 노래 부르고, 예쁜 날갯짓을 보여주려 애썼다.
어느 날 주인은 말썽을 피우는 새를 지금의 두 번째 새장으로 옮겼다. 나머지 한 마리에게 행동이 전염될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개의 새장이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더 큰 자유를 꿈꾸는 자에게만 보인다. 우리는 지금 어느 새장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