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응, 고마워.”
거의 매일 아침 우리 부부 사이에 오가는 짧은 대화다. 나보다 먼저 출근하는 아내에게 카페에서 방금 내린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건네면 상쾌한 표정으로 집을 나선다. 특히 비 오는 날 운전하다가 신호등에서 잠깐 멈춰 음악을 들으며 내가 타 준 커피를 마실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에 비례한다던가! 별 것 아닌 커피 한 잔에 아내가 가끔씩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아내는 커피를 즐겨 마신다. 손에서 커피 잔이나 텀블러가 떨어지지 않으며, 외출할 때도 한 잔 가져가야 하고,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 가서도 그 지역의 커피를 맛보는 것이 중요한 일정 중의 하나이다. 해외여행 갔다 올 때 아내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는 여느 남자들과는 달리 나는 그 곳 커피를 사오는 걸로 끝낼 때가 많다.
3년 전 어느 날, 밑도 끝도 없이 아내가 집안에 카페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당시 좀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좀 우울하고 외롭다며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것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 마시고 음악도 들으며 책도 읽을 수 있는 카페였으면 좋겠고 베란다를 카페로 사용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좁은 아파트에 카페라니. 사실 처음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공사기간 동안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집안이 온통 먼지투성이가 될 것이 뻔했고 공사비용도 꽤 들 것 같은 데다 베란다에 잔뜩 쌓아놓은 물건 치울 일도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결국 아내의 뜻을 존중해 안방 쪽 베란다를 카페로 바꾸는 공사를 시작했고 며칠 후 카페가 완성되었다. 비록 작지만 필요한 건 웬만큼 다 갖추었고, 하는 김에 조명이나 장식에도 나름 신경을 썼다. 아내는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사온 이런 저런 소품과 새로 산 커피 머신을 펼쳐 놓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아내의 뜻을 따라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가끔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커피를 마시고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고 방문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카페에 걸어 놓기도 한다. 카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이 늘어났다. 여행 갔다가 사온 그림도 벽 한쪽에 자리 잡더니, 손님들이 오면 필요하다며 예쁜 의자와 쿠션도 몇 개 더 들여놓고, 앤티크한 느낌을 내고 싶다며 오래된 물건도 몇 개 가져다 놓았다. 지금도 어디 여행 가면 소품으로 쓸만한 괜찮은 물건을 찾아보느라 눈과 발이 바쁘다.
처음에는 직접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아가더니 언제부터인가 그 일은 내 일이 되었다. 매일 아침, 그리고 외출할 때마다 커피를 갈아 아내 입맛에 맞게 연하게 내려서 텀블러에 담고 또 커피머신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사실 귀찮은 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내가 가끔 카페 청소를 한다는 것. 그런데 자기를 위해 만든 이 카페를 멀리 하는 시간이 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아내는 가을 들어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카페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덕분에 이때부터 카페는 내 차지가 된다. 여기서 커피에 곁들여 바라보는 단풍이며 공원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뒤적거리는 시간은 휴일 아침 나에게 짧지만 작은 기쁨을 선사한다. 아내를 위해 만든 공간이 이렇게 가끔 나만의 공간이 되어 위안을 주는 일이 많아졌다.
집에 아담한 카페가 생기면서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무슨 일이 있을 때 여기 들어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조금 있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 운동과 술 외에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하나 늘어난 셈이다. 또 전에는 손님이 와도 거실에만 있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카페로 들어가 사진도 찍고 얘기도 한다. 그리고 카페를 꾸미고 관리하다 보니 공통의 화젯거리나 같이 할 일이 생기는 등 일상에 소소한 활력이 생기는 것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내 뜻과 맞지 않아도 뭔가를 해야할 때가 있다. 사실 그것이 나에게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시간이나 비용이나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는 것일 수도 있고,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작은 이해와 양보가 다른 누군가에게 위안과 도움이 되고 나아가 작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이 또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더구나 내가 양보하고 도와줬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반가운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 이 세상이다.
“여보, 커피 한 잔만 내려주세요!”
오늘 아침에도 나는 커피를 내렸다. 한 잔은연하게, 또 한 잔은 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