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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 글로벌경영과 이종욱 교수

등록일 2017년01월09일 11시28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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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교수(글로벌경영과/대학발전연구원장)
연예대상 말고도 연말이면 언론에 발표되는 올해의 선정 행사가 있다. 그중 하나가 올해의 좋은 책이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2016 올해의 좋은 책 10’을 발표했다. 여기에 읽었던 책 중 한 권이 선정되어 있었다. 죽음에 관한 에세이 모음인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이다. 표지에 있던 원제 ‘When Breath Becomes Air’가 인상적이어서 지난 여름 서점에서 예정 없이 구입한 책이었다. 저자 나이 서른여섯, 전문의를 앞둔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 해에 폐암 4기라는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수많은 치명적인 환자들을 치료하며 죽음과 싸우던 저자가 자신도 폐암 말기라는 죽음과 마주하게 된 마지막 2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 제목은 영국 시인 브룩 풀크 그레빌(1554-1628)의 시 ‘카엘리카 소네트 83번’에서 따왔다고 했다. 시 카엘리카는 이렇게 시작한다.

“You that seek what life is in death, Now find it air that once was breath.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2016년 후반 4분의 1 이상의 시간을 삼켜버린 그 사건은 좀처럼 잠잠해질 기미가 없다. 2017년에도 그 공룡 같은 혼돈은 계속되리라 예고되고 있다. 연구실 창에 비친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한 해를 경건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요즘 얼마나 큰 사치인지 잘 알고 있다.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을 앞에 두고 평정을 찾아 잠시나마 오래된 과거와 마주해 본다.

모든 걸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만으로 원하는 모든 걸 다 직접 경험하고 체험해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체험의 대체재 또는 보완재로써 내가 젊은 날부터 선택해온 방식이 ‘책읽기’였다. 물론 ‘책읽기’가 항상 해결책이나 즐거움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그만큼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법도 없었던 것 같다. 또한, 간혹 행간을 통해 느끼는 쾌재는 직접 체험 못지않은 제법 쏠쏠함을 가져다주곤 했다. 그동안 흘려보낸 수많은 페이지 위에는 그 세월만큼의 때가 켜켜이 쌓여 과거라는 이름으로 앉아있다. 그동안 세상이 몇 번 바뀌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찾을 수 있는 자료와 정보가 몇 분, 몇 초 안에 확인되고 전달된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양의 넘쳐나는 정보와 마주하고 있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올해에도 수많은 정보가 들어오고 나간다. 그러나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학보사 기자가 요청한 주제는 ‘나를 키우는 시간’이었다. 주제를 떠올리며 뽑아 든 책과 시가 양성우 시인의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1982)’와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 ‘누가 바람을 보았다 하는가?(Who has seen the wind?)’였다. 이제는 책의 종이가 노랗게 결어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스무 살 무렵 연필로 곱게 밑줄 쳐진 시의 한 부분을 다시 읽어 본다.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I nor you : But when the leaves hang trembling The wind is passing through. (누가 바람을 보았다 하는가?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지 잎새가 잠시 흔들릴 때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중이지).” - Christina Rossetti (1830~1894)의 시, ‘누가 바람을 보았다 하는가?’ 중에서

나를 키운 시간을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 그곳에 나를 키우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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