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현 교수 (환경조경과)
차가운 물을 마신다. 따뜻한 것을, 또는 뜨뜻미지근한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차가운 것을 선택했다. 아니다. 밖에 잠깐 나가서 차가운 커피를 선택해 올 수도 있었는데, 바보같이 물을 선택했다.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이 글을 쓰는 지금 몸은 어느새 떨고 있다.
이 글을 보게 될 학우들의 나이 때, 필자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준 영화를 만났다. Dangerous Minds(‘위험한 아이들’로 상영, Gangsta’s Paradise란 OST는 우리나라에 흑인 랩 성향을 유행시킴)라는 영화였는데, 미 해병대 복무를 한 후 영어교사로 전업하기 위해 교생실습을 받던 중 문제아 학급의 새 담임으로 배정받은 인물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그녀가 담임을 맡은 학생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환경에서 성장해왔으며 접근하기 힘든 반항 심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는 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며 힘을 북돋아 준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학생들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맘을 열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여러분은 지금껏 살면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대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건가요?”, “(학생들)…”, “저는 '선택' (choose)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해왔습니다. 때론 나쁜 「선택」을, 때론 좋은 「선택」을...앞으로 우리는 또 많은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상기 대사를 지하의 좁고 좁은 비디오방에서 혼자 보다가 이유도 모른 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니 대학만 입학하면 모든 게 핑크빛으로만 보일 거라 여겨왔고,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것처럼 세상은 아름다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에 대한 반항으로 나 자신이 나태하도록 선택해왔고, 그 선택은 또 다른 나태함으로 이어지도록 방임을 선택했던 것이다. 온전히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선택'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영화의 끝을 보기 전에 감정이 더욱 북받쳐 올라 필자는 밖으로 뛰어 나섰다. 어느덧 동쪽에는 해가 뜨려 했고, 조간신문을 지정된 곳에 돌리는 사람, 편의점에 당일 팔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 등등 이유야 어쨌건 자신만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새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난 왜 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선택'하지 않은 잉여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선택'이란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 감상 이후 여러 책을 독파한 결과 선택이란 시급성(당위성)과 만족성(흥미성)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매겨져야 하며, 그에 따른 내 나름의 기준을 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뭔가를 선택할 때 필자는 영화와 책의 독후감으로써 그 새벽의 느낌을 선택 순위로 발전시켜 지정해두고 살아왔다. 물론 삶의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니까… 그러나 이러한 기준 없이 여태껏 느낌으로만 삶을, 즉 '선택'을 대하고 있는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미약하나마 공유한다.
'선택'의 우선순위
1순위 : 반드시 지금 해야 하는데, 재미도 있는 것, 2순위 : 반드시 지금 해야 하는데, 재미는 없는 것, 3순위 : 재미는 있으나, 추후에 해도 되는 것, 4순위 : 재미는 없으나, 추후에 해야 하는 것, 5순위 : 재미도 없고, 안 해도 되는 것
5순위는 당연히 버리는 것으로 동의할 거라 생각된다. 한편, 이 중 2순위와 3순위는 개인에 따라 바뀔 수 있겠지만, 사람이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동물이기에 시급성 측면을 먼저 고려하고 재밌는 것을 뒤로 배치하는 게 더 낫다. 마치 쓴 약을 먹은 후, 사탕을 입속에 넣는 것처럼 말이다.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순위와 요소들은 개인적으로 바꿔도 좋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무렇게나 느낌대로 선택하지 말고, 자신의 원칙을 세워보라는 것이다.
이 글이 실릴 즈음엔 스승의 날도 지나가고 조기 대선도 이미 치른 상황이겠다. 필자는 교수로서 ‘참되거라! 바르거라!’라고 단 한 번도 가르친 적 없다. 대신 여러분께 선택을 잘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유권자는 대통령 후보도 잘 선택했길 바란다.
우리의 삶에 리셋(reset)이나 ‘Ctrl+Z’는 없다. 자신이 결정한 모든 선택이 앞으로의 나를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선택으로 오롯이 이뤄질 테니 말이다. 즉, 뭔가 하고 싶다면 일단 나만 생각하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없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된다. '선택'은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