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 고기라는 식품은 우리에게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 고기란 잘 먹고 배불리 먹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대접받는 식사의 질은 고기반찬의 유무에 따라 정해지고, 굶주리는 북한 인민들이 바라는 식사 역시 하얀 이밥과 고깃국으로 대표된다. 또한 어떤 사소한 경사라도 그 축하의 자리에는 반드시 고기가 등장한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시대, 한국동란과 전후 혼란기를 거치며 한민족은 100여 년 동안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근에 허덕여왔다. 고기는커녕 맨밥에 푸성귀라도 먹을 수 있으면 잘 먹었다고 말하던 그 시절, 서민들에게 고기는 말 그대로 그림 속의 떡과 같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고기는 ‘죽음’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육으로의 가공을 기다리며 차례차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들의 모습과, 구제역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수천, 수만씩 흙구덩이 속으로 사라지는 돼지들, 날갯짓 한 번 하기 힘든 닭장에 갇혀 평생을 살다가 그라인더의 칼날 사이에서 최후를 맞는 닭들처럼, 고기는 분명 어떤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가 동반되어야만 하는 식품이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육식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생명강탈’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육식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부담이 생명 강탈에 수반되는 양심적 가책뿐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생명강탈에 따른 양심의 가책 외에도 육식이 이 행성의 환경과 인간들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각종 수치와 자료들을 통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12억 8천 마리의 고기용 소들은 지구 전체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미국에 사는 소들의 경우 미국이 생산하는 곡물의 70%를 소비한다. 또한 이 소들이 내뿜는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는 지구의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사람이 소를 기르는 것에서 반대로 소가 사람을 집어삼키는 꼴이 된 것이다.
저자는 절대 육식을 그만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육식이 자연과 사회에게 제대로 된 가치를 지불하지 않고 자꾸만 지불을 미루는 이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다면 책의 제목처럼 ‘육식의 종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육식을 함으로써 소비되는 환경, 사회적 가치만큼의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고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육식의 종말을 늦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는, 과학자들이 저자에 대해 ‘운동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며 과학적 사실의 검증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하며 비판한다는 점도 인식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형렬 수습기자 pak_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