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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또 다른 의미: 접촉-문희정 교수(항공서비스과)

등록일 2017년09월13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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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정 교수 (항공서비스과)

지난달 여름방학, 노곤하고 게을러져 학원 가기 싫은 마음에 우리는 여행 한 번 안 데려가나요?”라며 아이가 졸라댄다. 미안한 척 멀리는 못 가고 동남아시아로 다녀오자는 제의에 그럼, 괌 가요. 동남아시아 중에서 제일로 가보고 싶었어.”라고 한다.

야자수 있는 해변에 서구화된 동양인이 있으니 동남아시아의 국가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일정대로 호텔, 항공권 예매를 마치고 바쁘게 여행 준비를 위한 검색에 돌입한다. ‘괌 여행이라는 검색어를 넣기만 하면 쏟아지는, 블로그가 친절하게 제공해주는 자세한 정보들을 메모하며 비교해본다. 블로거들이 분명 현지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출국을 위해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시간까지 모든 여행일정을 꼼꼼히 가이드 해 줄 것이다.

블로거들의 안내만 잘 따라가면, 틀림없이 한국인의 입맛에 안 맞는 메뉴를 주문해 낭패를 보거나 남들 다 가는, 그래서 관광명소라고 일컬어지는 핫한 장소를 놓친다거나 국내 대비 가격경쟁력 없는 물건을 미련하게 한 가방 가득 쇼핑해오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럴 것이다.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누군가의 여행일정을 차례대로, 혹은 순서만 바꾸어 모방하기 시작했다. 생전 일면식도 없는 그(또는 그녀)가 한 것처럼 한인이 운영하는 택시를 부르고 꼭 들러야 후회 안 할 대표적인 쇼핑 장소라고 일러준 마트에 들러서 그들이 친절하게 사진까지 첨부해가며 자랑한 아이템을 나도 따라 구매하고는 현명하고 아주 순탄하게 여행을 치러내고 있는 거라 만족해했다.

다음 코스는 저 앞 햄버거 가게다. 직원 외에 현지인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햄버거 가게엔 손님 90%가 한국인이다. 이쯤 되면 도대체 여기가 해외인지 이태원인지 잠시 잊을 법한 가게에서 사람들이 뭘 주문하는지 눈여겨보거나, 뭐가 가장 맛있을지 테이블 위를 탐색해 볼 필요는 없다. 물론 직원에게 서툰 말을 섞어가며 메뉴를 추천받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준비성 넘치게도 메뉴는 이미 한국에서 정하고 온 터. 먹으라는 대로 먹자, 그게 실수가 없다. 아이가 치킨이 들어간 세트메뉴를 고른다. 그러나 블로그에서 디테일한 평가를 보거나 추천을 받지 않은 메뉴는 영 내키지 않는다. 검증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에게는 블로그의 묘사를 인용해가며 추천메뉴를 권해본다. ‘그러니 우리 후회할 일 없게 그냥 이거 시켜 먹자.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며 여행을 회상해본다. 실패가 없는 안전한(?) 여행이었다. 선험자의 평가와 추천을 배제한 미지의 무언가를 새롭게 용기 내 시도함으로써 감수해야 할 실패의 위험이나 시행착오의 불편함을 일찌감치 봉쇄해버린 안전한 여행, 아니 안전한 답습이었다. 시도, 도전, 선택이 없는 답습과도 같은 여행은 마치 틀린 그림 찾기처럼 무미건조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시도하고 도전하며 선택하는, 여행다운 여행을 추구하길 바란다. 건강한 신체단련과 심리적· 정서적 고양을 위해 여건이 되는 한 방방곡곡, 오대양 육대주를 폭넓게 여행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적 문화를 체험하고 문명론적 가치를 경험하여 근본적으로 성찰을 촉진하라는 얘기도 아니다. 그저 단조로운 일상과 반복되는 현실로부터의 소박한 탈출과 삶의 재충전을 위한 거창하지 않은 여행일지라도 그 안에 접촉이 필요하단 뜻이다. 네이버 지도나 내비게이션 대신 낯선 타인에게 길을 물어보고, 온라인 마켓에서 할인쿠폰을 발급받는 대신 전통시장에서 야무지게 물건값을 깎아보는 접촉 말이다. 비단 외부 세계와의 접촉만이 아니다. 선택을 위한 나와의 접촉이 아쉬운 요즘이다. 남이 골라준 교통 매체, 남이 소개한 여행지, 남이 추천한 음식점이 아니라 바로 내가 선택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나 자신과의 접촉도 중요하다.

내 안에서 요구하는 것에 귀 기울일 줄 알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순응하는 선택을 해보는 것, 그것이 비록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하는 대가가 있더라도 용기를 내어보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도 미래를 위한 초석으로 삼을 수 있는 여유로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나 자신과의 접촉이라고 생각된다. 가까운 곳, 짧은 일정이면 어떠한가? 젊은이들은 가벼운 주머니로도 구애받지 않는 삶의 또 다른 통로,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그 안에서 접촉하길 바라본다. 접촉 속에서 느끼는 진정성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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