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氷塊, 얼음덩이)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랜만에 친구 와군(蛙君, 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저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 세 마리 담꼬리에 부유하고 있지 않는가! 짐작컨대, 지난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적은 담수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 웅덩이 밑)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일제 말 ‘성서조선’이란 잡지에 실린 ‘조와(弔蛙, 개구리를 애도한다는 뜻)’라는 글이다. 일제는 이 조와(弔蛙)가 자신들의 폭압 속에서도 살아남은 민족정신을 담은 글이라고 하여 그 잡지를 폐간하였다. 나아가 이 글의 필자이자 성서조선의 편집인이었던 김교신(1901~1945)과 그의 동지 함석헌을 비롯한 수십 인의 독자들을 검속하였고, 김교신은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내가 김교신을 만난 것은 국민은행을 다닐 때였다. 한 지인이 내게 건네준 「김교신(김정환 저)」이란 책을 통해서 나는 그의 사상과 철학과 삶을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미래를 향한 꿈이 없었다. 있다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을 진학할 무렵인 1970년대는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던 때였다. 공대와 경영대의 인기가 높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점수에 맞춰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에도 전공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LG그룹과 한국전력에 잠시 몸을 담았다 옮겨간 직장이 국민은행이었다. 처음 들어가 보름 정도 한 일이 큰 책상 위에 돈을 수북이 쌓아놓고 사용 가능한 지폐와 폐기 처분할 낡은 지폐를 구분하여 100장씩 묶는 일이었다. 본격적인 은행 업무를 맡은 뒤에도 나는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보기로 결심하고 있을 때 나는 김교신을 만났다. 그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글이 성서조선 창간호이다.
“다만 우리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이라는 두 글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제일 좋은 선물은 ‘성서’ 한 권뿐이니 둘 중의 하나를 버릴 수 없어서 된 것이 그 이름(성서조선)이었다. ㆍㆍㆍ‘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교 신자보다는 조선의 혼을 가진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골로 가라, 거기에서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을 너의 사명으로 삼으라. 한 세기 후에 동지가 생긴들 무엇을 한탄하겠는가.”
성서의 상당 부분은 AD 70년경 이스라엘의 멸망 즈음에 쓰여졌다. 그래서 성서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 무교회주의자인 김교신의 글에서 나는 민족의 미래를 보았고, 그 미래를 감당할 동지를 찾고 있는 선생을 만났고, 그리고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을 만났다. ‘한 세기 후에 동지가 생긴들 무엇을 한탄하겠는가?’란 그의 글은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학생에 대한 비전이었다. 그렇게 김교신과 함께, 가르치는 자로서의 나의 사명(mission)이 구체화되었다. 은행에 들어간 첫 해에 결혼을 하였고, 신혼여행 경비를 절약하여 야간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그렇게 나의 직업을 향한 준비가 시작되었고,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인문주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내게 일어난 사건을 절정 경험(peak experience)이라고 불렀다. 매슬로우 역시 그런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연구 방향을 바꿨다고 회고했다. 그는 절정 경험이란 강렬하고 저항할 수 없는 황홀경과 경외감이라고 하였다. 이런 절정 경험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대자연의 경이 앞에 서서, 누구를 죽도록 사랑하면서, 우리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 순간, 내가 존재하지 않고, 지금과 영원이 하나가 된다. 이런 순간이 절정 경험의 순간이고, 매슬로우가 말하는 자기실현의 순간이다. 그는 이런 절정 경험이 우리를 성장시킨다고 믿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절정 경험의 존재나 그 중요성을 거부한다. 우리 속에 있는 두려움 때문이다.
절정 경험이 스쳐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현실성에서 나온다. 바람이나 욕망, 열등감이 섞이지 않은 현실적인 자신을 발견함에서 나온다. 더불어 편견이나 부풀림이 없는 타인과 상황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대학 시절,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때로는 내가 그러했듯이, 그 시기가 졸업 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보다 직장이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관을 제대로 찾아내기에 유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우리의 방황이 방황으로 그치지 않고,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절정 경험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