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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오지랖

등록일 2018년10월31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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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한 학보사 44기가 주축이었던 올해의 마지막 종이 신문의 ‘제작후기’. 이번 제작후기에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내가 맡은 이 코너의 무게감을 느낀다. 아직도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감은 오지 않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 본다.

309호는 학보사에 몸을 담고 나의 첫 기사가 실린 호였다. 44기 수습기자 5명이 ‘봄나물’을 주제로 한 특집 기사와 우리말 바로알기 기사를 경쟁하듯 썼던 때. 나는 하나의 기사에만 6시간 이상을 투자했다. 한 글자, 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것이 그리 힘들고 보람찬 일인지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310호가 되자 아무것도 모르고 맞이한 첫 지면 신문이 하필 체육대회 시즌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는지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난다. 땡볕에서 몇 시간씩 팔이 떨어져라 사진 찍고 발로 뛴 노력의 결과는 각자의 기사에 책임감을 가지라는 선배의 질책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모르는 것도 죄라는 심정으로 더 열심히 뛰어다녔다.
 
하지만, 310호가 발행되고 깨달았던 것 같다. 우리의 일이 보람은 있지만 그 보람을 누구나 알아주진 않는다는 것을. 그저 장식처럼 지나칠 신문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그 후로는 누구 하나 크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점차 우리에게 기사 쓰는 일은 쉬우면서 가볍고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매 순간 ‘누군가가 이 글을 봐주기나 할까?’라는 의심을 가졌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맡은 일은 많아졌고, 쓸 기사의 분량도 늘어났다. 그즈음 우리는 내년엔 우리 곁에 있을 신입 기자들을 기대했고 바랐다.

신구학보 309호부터 321호까지. 수습기자로 시작해 정 기자를 거쳐 명예 기자가 되는 날까지. 처음이라 힘들었던 5월부터 그 힘들었던 체육대회, 정신없는 축제. 매월 신구학보를 발행하면서 창작의 고통을 참고 머리를 쥐어짜 내며 지금을 기다려왔다. 마지막 신문을 발행하는 이 순간을.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지금이 되니 마음에는 괜한 의심과 후회, 아쉬움만이 남는다.

매 호를 발행하며 최선을 다했는지, 좋은 마음이 아닌 억지로 이 일을 해오지는 않았는지, 너무 이 일을 비관만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던져진 질문과 의심만이 한가득 남는다. 누군가 봐주지 않더라도 우리가 보면 될 것을, 귀찮고 하기 싫은 마음을 가지고 좋기만 한 척했던 것을, 내가 속해 있는 이 집단의 존재 이유를 의심했던 것을 후회한다. ‘또 시작이네’라는 마음으로 모여 진행하는 편집회의가, 항상 시험 기간과 겹쳐 날 괴롭히는 마감이, 매번 일어나는 크고 작은 해프닝도, ‘이번에도 잘 넘겼다’로 시작해 ‘정말 끝났네’로 마치는 강평회의마저 그리워질 아쉬움도 남는다.

후에 이 시기를 맞이할 기자들은 이러한 마음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즐겁고 아름다운 기자 생활을 하다가 명예롭고 깔끔하게 청산했으면 좋겠다. 주어진 일에 대한 의심만 품지 말고 자신감으로 미래를 펼쳐 나아가길 바란다. 떠나는 사람의 오지랖일지 모르지만, 마지막이기에 나에게 남겨질 이 마음을 남을 이들에게 전해주고 간다.


최아림 기자 carrie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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