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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그녀 앞에서 - 김주성 교수(공간디자인과)

등록일 2018년10월31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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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교수(공간디자인과)
그녀는 아주 어릴 적 친구였다. 그 시절엔 아침 등교 시간에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학교 정문을 걸어 들어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얼마 동안 그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날인가 그녀는 근처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버렸다. 당시에는 꽤 유명한 사립초등학교였다.

간간이 들려오던 그녀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엄친딸'의 전형이었으나 난 애써 무관심한 것처럼 반응했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은 10여 년이 지나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였다. 그 오랜만의 만남은 긴 시간이 무색하게 거리감이 없었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만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그녀는 다시 먼 나라로 유학을 떠나 버렸다.

난 그사이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취업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길은 선후배 관계가 다소 엄격했던 연구실 생활, 짧지만 강렬했던 군 생활, 신입사원의 몸가짐을 익혀야 했던 연수원 생활 등 신호등을 잘 살펴야 하는 사거리 같은 길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앞으로의 삶에 성공을 보장한다는 믿음 같은 것이 있었기에 그러려고 노력했다.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 무렵 어느 해 가을의 첫날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지난 만남에서 또다시 10여 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시간의 간극보다도 삶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의 틈이 크게 느껴졌다. 그녀는 말 한마디 손동작 하나에서도 자신감이 넘쳤으며 당당하게 자신의 능력과 실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난 왠지 그녀 앞에서 주눅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걸어온 길도 많은 노력과 좋은 결실을 가지고 있는데 난 왜 그녀처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걸까?’

어릴 적 도덕(바른생활)’ 시간에 배운 겸손과 양보의 미덕이라는 내용이 퍼뜩 떠올랐다. 마치 길 끝에서 반짝이는 보석처럼 그 길만 쳐다보면서 20여 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낮출 때 오히려 남들이 더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게 될 거라는 생각, 그래야만 사회에서 제대로 된 사람으로서 자리 잡고 존경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파묻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내비게이터였기에 그것이 안내하는 내 삶의 길은 항상 그런 길이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은 변해가고 있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변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삶의 태도를 바꾸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그 순간이었다. 내가 잘해온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잘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자신 있게 자랑하고 인정받고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간다면 훨씬 더 다양하고 즐겁고 유쾌한 길을 걸어갈 수 있진 않을까!

그리고 오래지 않아 난 직장을 떠나 신구캠퍼스에서 새로운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덧 신구와 함께한 시간이 올해로 20년째가 되었다. 특히나 올가을은 신구엑스포와 더불어 캠퍼스에서 20번째 맞이하는 가을이기도 하다. 긴 시간만큼 세상은 또 많이 변했고 때로는 즐거움도 어려움도 있었지만, 매년 가을이 깊어질 때면 신구 가족이 잘해온 것, 잘할 수 있는 것, 잘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들을 자신 있게 드러내 놓고 자랑하고 평가받는 이 선다는 것만큼은 여전히 20년 째 변치 않고 있으니 신구의 역사는 물론 내 개인의 역사를 쓴다 해도 한 챕터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일이지 싶다.

엑스포 준비를 하느라 며칠째 밤샘 작업도 마다치 않고 고생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이 엑스포를 통해서 바라는 것과 얻을 것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본다. 각자에게 신구엑스포의 의미와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많은 것들, 드러내지 못했던 우리 안의 새로운 것들을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순간이며 그런 장소인 것만큼은 서로 생각이 같지 않을까? 이왕 자랑하는 거, 힘들고 귀찮더라도 조금 더 내 안의 나를 한껏 드러내어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기회일까!

가을이 가기 전에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역시 서로 많이 변했고 또 변해가고 있겠지만 이번에 다시 만난다면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그동안 내가 잘해온 것, 잘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들을 진솔하고 자신 있게 떠들고 싶다. 그 자리엔 그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지인들, 아니 처음 만나는 누구라도 함께해서 한바탕 저마다의 자랑거리들을 펼쳐놓아도 좋겠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간의 노력을 격려하며, 결실을 축복하는 그런 자리였으면 더없이 좋겠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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