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돈 교수(공간디자인과)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
‘고향의 봄
’에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중략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장소가 꽃피는 산골이 아니더라도 고향이라는 장소의 그리움이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줍니다
.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에 가면 그 장소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
, 함께 지낸 사람들의 기억이 바탕이 되어 공감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장소는 환경이라고 부르는 물리적 공간입니다. 사전적 해설로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입니다. 매우 평범한 일상으로 이어져 온 장소라 하더라도, 그곳에 머물며 반복된 일상을 살았다 하더라도 각 개인이 갖게 되는 장소에 대한 기억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한 장소라도 어느 누구에게는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소에 대한 기억은 각자의 과거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타인에 의해서 엮어 놓은 사연이 그 장소의 특성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체계에는 장소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공간이 제약이나 고유한 특성이 있다면 그것을 장소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장소가 갖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소성을 갖게 되는 것은 공간의 물리적 조건과 그 장소에서 발생하였던 기록에 남을 행위가 있었고 그 이유로 공간에 의미가 부여되었을 때부터입니다.
장소는 과거의 체험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행동과 생각, 주변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매 순간순간을 채워 나가는 것입니다. 장소의 가치와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장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필요 요구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사용자의 니즈를 수용하는 디자인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소의 미학은 사용자의 기억과 경험에 바탕을 두고 항상 새로운 니즈를 해결함으로써 생성될 수 있습니다.
장소의 미학은 시각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공간에서 형성되는 삶의 행태와 연속되는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장소를 디자인하는 것은 삶이 긍정적으로 진행되도록 삶을 채워가는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장소에 있고 싶은가?’, ‘어떠한 공간에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답변은 실로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시간, 환경, 함께 사는 가족 등등이 같은 경우가 없기 때문이지요. 살고 싶은 공간은 편안하게 쉴 수 있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는 자신을 위하여 프랑스 남부 카프 마르탱 해안에 16
에 불과한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 지중해의 오두막은 손을 뻗으면 천장에 닿고
, 화장실에는 문이 없이 커튼으로 가릴 수 있었습니다
. 몸 하나를 누울 침대와 바다가 바라보이는 창가에 작은 책상이 배치되었습니다
. 이 공간은 여유와 사색으로 사용한 장소였고 그가 생을 마감한 바닷가이기도 합니다
. 수많은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자신을 위하여 선택한 안락한 장소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최소한의 공간이었습니다
. 실험적이고 행복한 장소를 만든 사례입니다
.
행복이나 불행을 느끼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환경과 상황에 의한 것입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장소에서 어떠한 시간을 갖게 되는가에 따라서 그리고 그 공간의 환경이 구성되는 내용에 따라서 사용자의 목적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꿈을 위해 살게 된다고 합니다. 장소는 기억을 소환하여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습니다. 가치 있는 장소는 미래의 꿈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미래를 아름다운 기억으로 되새길 수 있는 시간과 행동들을 만들어 가야합니다. 행복한 꿈을 그리고 자신의 꿈을 위해 지금의 장소에서 아름다운 나날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장소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