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5월 22일, 오늘은 조선의 독립운동가 장인환(1876.03.10.~1930.05.22.)이 사망한 지 89주년이 되는 날이다.
장인환은 평안남도 대동군 태생으로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었다. 그는 학업도 포기하고 돈을 벌다 청일전쟁을 경험하고 우리나라의 국세를 바로잡기 위해 헌신한다. 캘리포니아에서 막노동을 하던 중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로 조국의 주권이 침탈된 사실에 분노한 장인환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에 가입하여 독립투쟁을 벌이기로 마음먹는다.
1908년 3월, 친일파 미국인이며 조선 통감부와 밀착해 있던 통감부 외무고문인 스티븐스(Stevens, D.W.)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게 유익하다’는 친일성명을 발표한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장인환은 그를 저격하기로 결심한다.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 D.C.로 떠나는 스티븐스를 공격하려던 중 장인환과 같은 목적으로 대기하던 전명운이 먼저 스티븐스와 격투를 벌였다. 장인환은 권총 세 발을 발포했다. 한 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빗맞았지만, 나머지 두 발은 스티븐스를 적중했고 중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이틀 후 사망하게 된다.
장인환은 경찰과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함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진술서를 제출했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뭐요? 수십만 명이 그의 계획 때문에 죽어갔소. 그러니 나는 내 조국을 위해 그를 쏜 것이요’, ‘나는 투옥되느니 차라리 죽음으로 순국하고 싶소. 나는 조국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했고 법이 나를 어찌할지는 관심이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