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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그 화가에 얽힌 이야기

등록일 2019년06월19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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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유명한 작품? 시대? 화가? 사람마다 모두 다른 것을 떠올릴 것이다. 명화에는 자연의 색감과 인간의 상상력 그리고 화가의 세밀한 감정 등이 담겨 있다. 명화를 감상하면 화가가 화폭에 쏟은 모든 감정과 지적 재산, 최고의 상상력을 느끼고 영혼과 교감할 수 있다. 모든 그림은 화가마다 나름대로 독특한 자기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 화가가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그림과 화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면 명화를 더 의미있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모나리자’
르네상스 미술이 중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던 시대에 다방면으로 활약한 이탈리아 화가로,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을 완성시켰다고 일러진다. 화가로서의 작품이 그리 많지 않지만 다방면으로 활동한 팔방미인인 만큼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건축, 과학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모나리자」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눈썹이 없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눈썹이 없다는 특이점이 시선을 끌었고, 온화하고 신비로운 미소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럼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모나리자」는 왜 눈썹이 없는 걸까?’ 여기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어느날, 다빈치에게 조콘도라는 사람이 부인의 초상화를 부탁했다. 다빈치도 그 부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어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그림은 쉽게 완성되지 않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기다리다 지친 부인의 가족은 그림의 눈썹만 남겨 놓은 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여행 중 부인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결국 부인의 사망으로 눈썹을 마저 그리지 못한 「모나리자」가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의 온화하고 신비로운 미소를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을 가진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해 표현했다. 그림에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할 때 쓰이는 음영법으로 대상의 윤곽을 마치 안개에 싸인 것처럼 부드럽게 나타낼 수 있다. 이 기법을 사용해 그녀의 미소가 더욱 신비로워 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키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비엔나 분리파 화가로, 귀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에게서 예술적 감각을 물려받았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귀금속 세공 기법과 동양적인 무늬, 장식 기입 등을 그림에 응용해 독특하면서도 화려한 그만의 그림 세계를 창조하였다. 특히 여성들의 관능적인 매력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여인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아르누보 양식을 취한 장식적인 화면 구성과 관능미로 주목받은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 꿈꾸는 듯한 몽롱한 표정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는 평생 단 한 점의 초상화도 그리지 않았고, 자기 그림에 대한 어떤 설명을 한 적도 없으며 인터뷰에 응한 적도 없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만큼이나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클림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 바로 「키스」다. 황금시대 최고의 걸작이라고 꼽힌다. 행복한 듯 서로를 껴안고 있는 남녀가 인상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발치에 벼랑이 있다. 벼랑 끝의 키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여인이 클림트의 오랜 정신적 연인이었던 ‘에밀리에 플뢰게’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인상 : 해돋이’
모네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 외광파라고도 불리는 인상주의를 상징한다. 풍경 부문을 담당한 인상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대부분이 풍경화로 변화하는 빛을 색채로 표현하는 데 전념했으며 항상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색을 만들기 위해 물감을 섞을 때마다 색이 흐려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네는 색을 섞지 않고 덧칠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고, 이는 인상파 화가들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인상 : 해돋이」는 모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어둠속에서 해가 막 떠오르는 풍경을 그린 그림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 작품은 저녁에 그려졌다는 반전이 숨어있다. 모네는 순간의 변화를 포착해 거칠고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그려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인상주의 기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1874년 4월, 고전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살롱 심사위원과 다른 기준의 새로운 그림을 위한 발표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 한 무리의 젊은 화가들이 제1회 인상파전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출품자는 총 30명으로 이때 모네는 12점을 출품했다.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은 모네의 작품들을 보고 어이없어 했다. 아무렇게나 자기 인상대로 물감을 발라 놓으면 다 그림이 되는 것이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중 특히 모네의 「인상 : 해돋이」가 가장 비난의 대상이 되며 작품의 제목을 따서 인상파라고 부르며 비웃었고, 이때부터 이런 형식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인상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배상은 기자 rnemf249@naver.com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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