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이자 자전적 작품인 「바람이 분다」가 국내에 개봉하면서 사회적으로 작은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아마 2차 대전의 패전국가인 일본의 전쟁무기 ‘제로센’의 개발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설정이 한국인에게는 석연치 않았으리라.
일부에서는 일본이 최근 우경화로 인해 주변국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영화를 제작한 미야자키 감독에 대해 우익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정작 미야자키 본인은 이 문제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라는 뜻이다.
자연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미야자키 감독은 공산당 기관지에 만화를 연재하는 것으로 데뷔한 대표적인 좌파 감독 중 하나다. 그의 초기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기계문명과 자연과의 거대한 싸움을 그리면서도 주인공의 고향인 바람계곡 만큼은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모델로 했으며, 이후에 나온 「모노노케히메」에서도 다시 한 번 작은 규모의 원시공산주의 공동체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미야자키 감독이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는 소규모 원시공산주의 공동체를 동경하고, 또 그의 작품 내에서 보이는 그나마의 이상향이 모두 이런 모습인 것은, 과거 맑스주의자였으며 지금은 무정부주의자에 가깝게 변한 감독 자신의 성향을 화면으로 그대로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미야자키 감독은 대단한 밀리터리 매니아(군사문화 전반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평화와 자연과의 상생을 강조하는 자연주의자이기도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기발한 디자인의 전쟁무기들과 실제 있을법한 모습의 군인들이 수백 미터급의 거대한 나무나 양탄자처럼 두껍게 쌓인 이끼와 함께 요동치는데, 특이한 점은 생동감 넘치는 거대한 숲이나 자유를 의미하는 하늘같은 자연 배경이 모두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엄연한 의미의 등장인물로서 기능한다는 점이다.
자연주의와 밀리터리는 언뜻 보면 서로 충돌할 것 같은 두 요소지만 감독은 모든 작품에서 항상 자연을 하나의 주요인물로 두고 정교하게 디자인 된 각종 무기와 군인들을 오히려 대자연이라는 주연 뒤의 배경으로 축소시켜 자신의 두 가지 성향을 작품 속에 교묘하게 녹여내곤 한다.
비행소녀
‘나우시카’는 그녀의 날틀인 ‘메베’와 바람을 타고, ‘센’ 또는 ‘치히로’는 용이 된 ‘하쿠’의 등에 매달려 하늘을 누빈다.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에서는 이외에도 수많은 소녀들이 마법이나 기계의 힘을 빌려 마법 같은 비행을 하곤 한다.
누군가 ‘로리콘(소녀를 좋아하는) 할아범’이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확실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거의가 소녀들이다. 누군가는 그 이유를 일본 남성들에게 만연한 ‘롤리타 콤플렉스(소녀에게 집착하는 성향)’에서 찾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자가 그리기 쉬워서’라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감독 본인의 인터뷰나 수필 등을 살펴보면, 미야자키 본인에게 있어 남성은 ‘힘과 억압, 파괴’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아직 신체, 정신적으로 때 묻지 않은 소녀야말로 그의 이상향인 ‘상생, 생명, 자연’을 상징하는 상징으로 적합하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감
독 본인의 의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감독이 그리는 ‘비행 장면’은 대부분 환희와 탈출의 순간으로 그려진다.
물론 나우시카처럼 생존과 전투를 위한 파괴적인 비행의 경우도 있었지만, 꼬마 마녀 ‘키키’의 첫 비행이나, ‘소피’가 ‘하울’과 함께 공중을 사뿐사뿐 걷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첫 비행의 긴장감과 불안감,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의 환희를 선사하고, ‘메베’를 타고 지상의 고통과 폭력에서 벗어나 하늘로 튀어 오르듯 사라지는 ‘나우시카’의 모습은 무거운 책임과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탈출감 내지는 해방감이 그려진다.
결국 인간에 의해 초래된 온갖 고통으로 가득한 지상, 혹은 디스토피아에서 해방될 수 있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저 하늘, 정확히는 모든 기계문명의 압제와 폭력에서 해방되어 자연과 함께 하는 모습이야말로 감독이 추구하는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형렬 기자 pak_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