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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아야 성공한다. - 최명희 교수(아동보육과)

등록일 2019년10월30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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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교수(아동보육과)
아이들은 하루 종일 논다. 놀고 또 논다. 누가 숙제를 내준 것도 아닌데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해서 논다. 어른이 그걸 그대로 따라 한다면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심심해” “놀아줘를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유아교육분야에서 가장 빈번하게 연구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놀이다. 버튼을 누르면 저절로 움직이는 장난감이 아이와 놀아주는놀이는 가짜놀이다. 진짜놀이는 아이가 상상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깊이 생각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노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놀이를 통해서 긴장과 불안을 발산하고 해소한다고 하였다. 인지심리학자 피아제는 자기가 경험한 것을 모방하여 재연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워서 이전의 지식을 수정해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역사학자 호이징가는 인류를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지칭하였다. 아이들의 놀이를 분석해 보면 비슷한 행위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 행위가 질적으로 발달하고 다시 반복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블록을 쌓고 부수고, 늘어놓았다가 쌓았다가, 그것을 기반으로 점차 정교하게 쌓고, 또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마치 점점 폭이 넓어지는 나선형의 포물선처럼 계속된다. 반복되는 감각적 경험이 점점 정교하게 연결되는 깊고 심층적인 학습의 과정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심층학습, 딥 러닝(deep learning)의 핵심개념이다.

얼마 전 알파고 때문에 인공지능에 대한 충격이 대단했다. 현대 과학자들은 겨우 1.5kg짜리 인간의 뇌가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에 대해 연구했고 인간처럼 독창적으로 사고하는 인공의 뇌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리고 그 열쇠를 찾았다고들 한다. 인간의 뇌는 뇌신경망의 뉴런들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미 알고 있던 정보와 비교해서 분류하고, 좀 더 복잡한 구조로 재개념화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창출해 내는 일을 계속 반복한다. 이와 같은 뇌의 학습과정을 기계적으로 반복 학습을 시켜서 인공지능을 만들어 냈다. 그때 사용하는 학습방법이 딥 러닝이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이유는 뇌신경망에서 딥 러닝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를 하는 동안의 몰입이 그 증거이다. 긍정심리학 분야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의 절정이 몰입(flow)’이라고 하였다. 몰입이란 현재의 자신이 감당하기에 도전이 필요한 상황이나 문제에 직면하여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이 빠져들어 마침내 현재의 능력을 살짝 넘어섰을 때 느끼는 정신적 충족감을 말한다. 시간의 물리적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 몰입이다.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할 때에도 바로 그 몰입, ‘행복한 딥 러닝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놀이 학원에 다니면서 강제로 놀거나 학습지에 집중해서 암기하는 것을 몰입이라고 몰아붙이면 절대 안 된다. 아이가 마음껏 어질러도 되는 장소를 허락 해주고 혼자 심심하게 뒹굴도록 해주어야한다.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해주는 것이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조작하는 방법이 정해져있는 비싼 장난감은 놀이의 속성에 적합하지 않다. 빈둥거리다가 떠오른 혼자만의 놀이, 친구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새로운 규칙을 계속 만들어 내는 놀이, 풀 뜯고 돌멩이 주워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놀이가 진짜 놀이이다. 놀면서 머릿속이 미로처럼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생각이 이어지고 그러다가 알게 되고, 자기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을 점점 정교하게 만들어 가는 지속적인 과정. 그것이 놀이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제대로 못 놀아서 15세의 행복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이고 청년이 되어도 여전히 자기불안을 느끼고, 어른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행복하지가 않다. 제대로 놀아 본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을 확률이 높은 요즘의 청년들은 지금이라도 진짜 놀이를 좀 즐겼으면 좋겠다. 남이 찍어 올린 먹거리, 갈 곳 영상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지 말고 낯선 땅으로 성큼성큼 떠났으면 좋겠다. 몽연한 음주의 환락을 떨치고 자기만의 독특한 창작의 산물을 만들어내는 환희도 느껴보길 바란다. 제대로 놀아보아야 제대로 된 행복을 얻게 되고 그게 진짜 인생의 성공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 1560246명의 아이와 91가지의 역동적인 놀이를 그린 <아이들 놀이>라는 그림이 있다. 유럽 전역에서 계몽주의와 인본주의 철학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플랑드르 인문주의자들은 아이들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것이 거장 브뤼헐의 그림으로 옮겨졌다. 지금 이 시대에도 네덜란드 아이들은 숙제와 책가방이 없고 여가시간에 놀이와 스포츠를 즐기는 것을 가장 우위에 둔다고 한다. 우연하게도 인류의 특징을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라고 지칭한 역사학자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도 네덜란드 사람이다. 그리고 2013OECD국가 중 아동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나라도 네델란드로 발표되었다. 500년 동안 쌓아온 놀이존중 역사에 대한 내공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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