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재 교수(환경조경과)
미세먼지로 뒤덮인 회색 빌딩 숲 도시의 풍경은 외출조차 꺼려지는 삭막함을 연출하고 있지만, 오늘도 수많은 학생, 직장인들은 그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빨라진 발걸음과 옷깃을 부여잡은 손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뿐,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시의 삶은 주변을 돌아다볼 시간을 주지 않고, 빠르게, 바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2018년도 우리나라 도시지역 인구비율은 91.8%로, 귀농인구로 인해 감소했던 2012년을 제외하고 1960년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정된 국토공간과 90% 이상의 높은 도시지역 인구비율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고밀도 개발을 유도하였고, 고밀도의 개발은 효율성에 집중되어 삶의 여유와 낭만이 사라지게 되어, 도시에서의 삶을 점차 무채색으로 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색도시의 건조한 삶을 보완하고자 제도적으로 공원녹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사업 시 도시공원 또는 녹지 확보 의무화 등 공원녹지를 확보하려는 일련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1인당 도시공원 조성면적은 10.1㎡로 독일 베를린이나 영국 런던에 비해 아직도 많이 낮은 실정입니다. 도시지역의 비싼 토지비용과 높은 밀도는 1인당 공원면적을 높이는데 커다란 장애물입니다. 때문에 최근에는 도로에 있는 가로수와 띠녹지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공원에 비해 사람들의 접근이 쉬울 뿐만 아니라, 그늘제공부터 도시 열섬방지와 물순환 측면에서의 활용도가 높고, 대부분 공공공간에 조성되어 있어 토지매입을 위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거나 최소화되기 때문입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에 식재된 가로수는 약 774만 그루이며, 서울시의 경우 2018년도 기준으로 약 30만 그루의 가로수가 식재되어 있고, 성남시는 2019년도 기준으로 약 4.9만 그루가 식재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완화 방안의 일환으로 가로수 수종변경 및 복층 2줄 조성하기 등의 대책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가로수는 상가의 간판을 가린다거나, 전신주 보호 등을 위해 매년 수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지치기를 해왔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제거되기도 하였습니다. 2009년 강남역에는 유비쿼터스 첨단서비스 및 콘텐츠 제공을 위한 통합형 가로시설물인 미디어폴이 80억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되었습니다. 당시 개당 가격이 2억원 넘는 고가의 미디어폴 22개 조성과 보도정비를 위해 강남대로변(강남구)에 있던 가로수를 거의 대부분 제거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가, 최종적으로는 이팝나무를 미디어폴의 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식재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에 첨단 기술의 복합체였던 미디어폴이 지금은 철거를 고민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함께 조성되었던 이팝나무는 하얀 꽃과 시원한 그늘로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주목받던 고가의 첨단기술이 주변에 흔히 보이는 나무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학자로 손꼽히는 존 나이스비트의 오래된 저서인 『하이테크 하이터치』라는 책의 내용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합니다. 기술의 발달(하이테크)은 삶을 편리하게 하고, 일을 빠르게 마치는데 기여하지만, 우리를 기술중독상태에 빠뜨려 인간성을 잃도록 하기 때문에,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여유와 계절의 체감 같은 하이터치한 감성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회색도시에서의 바쁜 삶 속에서도 길가에 있는 가로수를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보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