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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고 싶어지는 플레이리스트 # 8 봄날의 기억

등록일 2020년01월22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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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여기서 헤어지자, 급하게 할 일이 생겼거든.”
미나는 치아에 낀 고춧가루를 끝내 말하지 못한 채 계산을 마치고 가게 앞을 서성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동형과의 어색함에 지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 어?”
동형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대답을 얼버무렸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미나는 비즈니스 메일이 담긴 핸드폰 화면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잘 지내.”
호기심이라면 호기심, 외로움이라면 외로움 때문에 만난 동형이었지만 마주해보니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낀 미나는, 괜히 소개팅하겠다고 나선 과거 자신의 입방정을 탓하며 두 번 다시 마주하는 날은 없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말과 함께 싱긋 웃어 보였다. 비즈니스처럼 보이는 메일은 지난밤 초특가 세일을 밥 말아 먹듯이 하는 쇼핑 업체에서 날아온 스팸 메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동형이었다.
“...많이 어색했지?”
동형은 마치 다 안다는 듯 물으며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티 나지 않게 행동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어색한 속마음이 표정에 비쳤는지 이 어색함을 동형도 느끼고 있었나 보다.
“...티 많이 났어?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미안해.”
미나는 동형에게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과할 필요 없어. 서로 안 맞은 것뿐인걸.”
동형은 애꿎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조심히 가. 만나서 반가웠어.”
미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동형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연애는 무슨. 아니, 소개팅이 나랑 안 맞는 걸로. 미나는 발밑에 떨어진 벚꽃 잎을 지그시 밟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따스하고 분홍빛으로 물든 봄날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연인들이 벚꽃나무 주위에서 서로 인생샷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미나는 분홍 깨를 쏟는 연인들 사이에 홀로 서서 흩날리는 벚꽃 배경을 찍었다. ‘솔로 천국...’, 속으로 중얼거리며 찍은 사진들을 둘러보다 시선이 한곳에 멈추었다. 한 남성이 가만히 벚꽃을 바라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있었다. 미나는 사진을 삭제할까 생각하다 그가 나온 부분을 자르기로 결정하고 뒤를 도는 순간,
“어, 악!”
“...”
“!”
“저, 괜찮으세요?”
순식간이었다. 개천 다리 옆 바위 위에 서 있던 미나는 등 뒤에 서 있던 정체불명의 물체를 보고 놀라 발을 헛딛고 말았다. 미나는 ‘이대로 떨어지면 물인데... 집에 갈 걸 왜 사진을 찍어가지고! 애초에 소개팅만 아니었어도...!’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3초가 지났음에도 물에 빠져 엉덩방아를 찧지 않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던 중 들려온 목소리에 미나는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감...사합니다.”
미나는 넘어갈 뻔한 자신을 잡아준 상대의 예상치 못한 정체를 마주하고는 눈이 동그래지며 말했다. 사진 속 그 사람이었다.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잡았던 손을 놓은 그는 자신의 몸집만 한 기타를 등에 지고 있었다. 기타를 보고 놀랐구나.
“벚꽃이 예쁘네요.”
그는 미나를 향해 살포시 웃으며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벚꽃 잎과 반달 눈웃음이 묘하게 어울렸다.
“네...”
미나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간질-
몸속 깊은 곳에서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저기...”
미나는 꽃을 구경하는지 사람을 구경하는지 모르는 그를 나지막이 불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고 목을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이름, 물어봐도 돼요?”
봄날이었다.


오예림 수습기자 stcav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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