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경 교수(식품영양학과)
질병의 양상이 만성질환으로 바뀌면서 질병 치료 및 관리에 식생활 관리가 중요시되고 있다. 2003년 대장금이 평균 시청률 41.3%로 국민 드라마로서 주목을 받을 때 만 해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온 국민이 이렇게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과거에는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 식사의 최우선 목표였겠지만 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라 먹거리에 대한 우리의 관심사는 “양”이 아닌 “맛”과 “건강”으로 바뀌어왔고 이를 반영하듯 최근의 방송이나 인터넷 콘텐츠는 “먹방” 또는 “건강에 좋은 음식”에 대한 것들이 넘쳐난다.
“몸에 좋은 음식이 뭐야?” 이십오 년 넘게 병원에 근무하면서 환자들로부터 혹은 주변의 지인들에게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대학교 식사요법 수업 시간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식이요법(食餌療法)과 식사요법(食事療法)은 다르다.” 많은 사람이 식이요법과 식사요법을 같은 뜻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식이요법(食餌療法)이 식품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면 식사요법(食事療法)은 한 가지 식품이 아닌 식사 전체 전반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었지만, 영양사로서 경력을 한 해 한 해 쌓아가면서 교수님의 그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점을 시사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나쁜 음식은 없다. 어떤 식물 또는 동물이 식품의 범주 안에 들게 되었다는 것은 최소한 그때까지의 인류의 경험상 인체에 해가 되지는 않았다는 증거일 테니까. 인류의 생활 환경이 변한 것이고 그에 맞추어 섭취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했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질문은 “몸에 좋은 음식이 뭐야?”에서 “몸에 좋은 식사 방법이 뭐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건강한 식사는 어떤 것일까?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부터 배우는 이야기이겠지만 골고루 먹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식생활은 골고루 먹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2018년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우리가 부족하게 섭취하고 있는 영양소는 칼슘, 비타민 A, 비타민 C, 칼륨이다. 이중 칼슘을 제외한 영양소들은 모두 색이 짙은 채소나 과일에 풍부한 영양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하루 채소·과일 섭취 기준인 500g 이상을 섭취하는 비율은 남·녀 모두 30%도 안 된다. 모든 미디어가 몸에 좋은 음식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 우리의 식생활 성적표는 이토록 초라하다.
채소·과일을 하루 500g 이상 섭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대학 구내식당의 식사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식당의 반찬그릇에 나물이나 생채를 보기 좋게 담으면 채소량은 대략 50~60g, 채소가 주재료인 국건더기의 채소량은 40g 내외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채소 반찬 두 가지에 국건더기를 먹으면 150g 내외의 채소를 섭취하게 되고, 여기에 김치를 네다섯 쪽 추가한다면 대략 점심에서만 190g 정도의 채소 섭취가 가능하다. 과일은 평균적 1회 섭취량이 100g 정도이니 과일을 간식으로 섭취하면 채소·과일 섭취량이 290g 정도가 된다. 점심 한 끼와 간식 한번으로 권장량의 60% 가까이를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점심 섭취량을 기준으로 아침이나 저녁식사에 섭취하면 된다.
다양한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은 만성질환 예방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이는 채소를 충분히 먹으면 만성질환 치료를 위한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8년 건강보험 통계에 의하면 입원환자 다발성 질병 중 건당 진료비가 높은 순위 10위 안에 식생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질환이 9종을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 이상이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고, 65세 이상 노인의 진료비가 전체 국민 진료비의 4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식생활을 통한 건강관리는 의료비 특히 노년의 의료비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조금 비틀어 말하면 채소를 충분히 먹으면 재태크가 된다는 뜻이다. 실손보험으로 후일의 의료비를 보장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연금하나 드는 셈 치고 채소·과일 섭취량을 권장량에 맞추도록 노력해보자. 수년 후 만성질환으로 인한 의료비를 줄여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이다. 다만 채소·과일 섭취를 갑자기 늘리면 복통이 올 수 있으니 섭취량은 3~4일을 두고 천천히 늘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소화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사람들은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