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짧다, 이 책. 149페이지, 그것도 제목과 차례를 빼면 142페이지다. 142페이지라는 한정된 페이지 안에서 이야기는 묵직하게, 그러나 박진감 넘치게 달리다가 마지막에 와서 급정거를 하는 느낌이다.
주인공인 연쇄살인범 병수는 올해로 일흔이 된 노인이다. 제목이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데, 무시무시한 범죄소설의 주인공보다는 난롯가에 앉아 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이 어울리는 나이다.
사실 주인공의 현재 직업은 더 이상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살인을 한 것은 45살. 이미 25년 전에 은퇴를 한 몸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말년에 찾아온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차츰차츰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몸이다. 142페이지의 짧은 이야기 마지막까지 그가 살아있을지 어떨지도 걱정된다. 그런 그가 25년 만에 살인을 결심한 것은 인근에 출몰한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서다.
작가의 필체는 담담하고 남성적이고 수평적이라 모든 사실이 자세하고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나간다. 그러나 책의 끝부분에 이르러서 독자들은 당황한다. 본문 중 인용되는 금강경, 반야심경과 니체는 공통적으로 유(有)와 무(無)의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개인이 인식하는 이 세상의 일부, 혹은 전부가 거짓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결국 병수가 겪고 묘사했던 그의 주변 세상은 완벽한 진실일수도, 혹은 그의 기억 속에서 창조된 하나의 희극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야기의 주안점은 병수와 연쇄살인마의 피 말리는 두뇌게임도, 촉 좋은 형사와 은퇴한 연쇄살인마의 추격전도 아니다. 무너져가는 세계로부터 밀려오는 끔찍한 공포가, 한 때 일반인들에게 끔찍한 공포를 선사하던 연쇄살인범 병수 자신에게 덮쳐오는 데에 대한 짤막한 기록과,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일 수 있는 이 악마적 농담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딸에게 접근하는 연쇄살인범과 마주한 병수가 오랜만에 느끼는 살인자로서의 희열, 그러나 서서히 잠식되어가는 기억 속의 용의자는 마치 컴컴한 방 안의 검정고양이 같은 존재라,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은 병수 자신의 희망사항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 방의 불을 켤 때까지는. 실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자신의 세상과의 싸움이었으리라. 결국 병수의 세상이 모두 무너졌을 때 또 하나의 연쇄살인범은 그렇게 기억의 파편 속으로 사라진다.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는다. 오직 살아서 지옥을 상상하는 사람만이 그 아비규환의 불바다에 빠질 수 있다. 주인공 병수는 무너지는 세상에서 자기의 잊힌 공포와 죄책감을 마주하고 스스로 지옥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 오로지 진실이라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지옥에 떨어진 병수 하나 뿐이다. 날조되고 허술하게 보수된 그의 세상이 아니라, 인간 김병수가 스스로 창조하고 걸어 들어간 유일한 세상이자 완벽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내 살인의 과정을 정직하게 썼다.
첫 시의 제목이 '칼과 뼈'였던가? 강사는 내 시어가 참신하다고 했다.
날것의 언어와 죽음의 상상력으로 생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거듭하여 내 '메타포'를 고평했다.
"메타포라는 게 뭐요?"
강사는 씩 웃더니- 그 웃음, 마음에 안 들었다-메타포에 대해 설명했다.
듣고 보니 메타포는 비유였다.
아하,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본문中-
이형렬 기자 pak_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