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중독물질’로 지정하여 국가차원에서 직접 관리하는 대상에 ‘인터넷게임 등 미디어콘텐츠(이하 게임)’가 추가된단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사회 각계각층, 특히 청소년 및 20대 게임 이용자들이 많은 질타를 쏟아내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변질되어버린 청소년들의 인터넷 및 게임 과몰입에 대한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점에서 중요한 법안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인터넷 및 게임에 대한 과몰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지출을 늘리게끔 강요하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이 ‘게임 중독법’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법안이 사회적 지출을 줄이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게임 이외의 대체할 만한 것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게임회사의 목줄을 조이면서 이미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지출의 양을 늘리는 데 있다.
요컨대, 이 법안은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원인의 현상들을 하나로 뭉뚱그린 것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현상의 원인을 지극히 표면적으로만 바라보고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에 더 막대한 손실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법안의 타당성을 논하기 이전에 첫 단추를 잘못 꿴 격이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치우쳐진 목소리만으로 치부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리라.
게임과 인터넷은 ‘그 외’의 것들을 즐기지 못하는 이용자들의 대용품일 뿐이지, 결코 그것 자체가 규제당하고 사회악으로 취급받아야 할 성격의 물건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 법은 게임이 이용자의 신체/정신에 중독 작용을 일으킨다는 명확한 의학적 증거 없이, 심지어는 사실 확인이 된 바 없는 비전문가의 주장을 근거로 게임산업에 ‘중독물질’이라는 굴레를 씌우려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게임축제인 지스타를 방문하고 전 국민 앞에서 ‘게임이야말로 국가에서 지원해야 할 차세대 성장 동력’이라는 발언을 한지 꼭 1년만이다. 설마 자신이 대통령이 될 줄은 모르고 한 말이었을까?
지금이야 만화, 애니메이션은 ‘국산’이라 불릴만한 것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수입품, 그것도 옆 나라 일본산이기는 하지만 한때는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국산 만화를 읽고 국산 애니메이션을 보던 때가 있었다. 제작비가 크고 많은 스태프를 동원해야 하는 애니메이션은 주로 국가의 지원을 받고 어린이들에게 반공교육을 시키는 용도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애니메이션산업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가 혼자서 개인 작업이 가능한 만화산업의 특성으로 ‘임꺽정’, ‘일지매’ 등 우리 민족만의 이야기를 활용한 작품이나 ‘라이파이’, ‘조국을 등진 소년’ 같은 SF와 첩보스릴러물까지 실로 다양한 종류가 번성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벌어진 유해만화 퇴출운동으로 인해 한순간에 폭삭 무너지고 만다. 발단은 만화 속에서 죽은 등장인물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동경한 어느 소년이 실제로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만화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었는데, 이는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TV에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의 90%이상이 종영돼 버리고 만다.
국내 만화/애니메이션 산업의 멸망이 단지 재수 없게도 시대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느 시대이든 간에 세상은 ‘공공의 적’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고, 주요 소비계층이 어린아이인 산업일수록 이를 공공의 적으로 지정하는데 불편함이 적다. 우리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게임문화를 고사시키려는 목적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한 번 시들어버린 문화는 그 즉시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화가 채우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사회는 문화 불균형의 딜레마에 빠진다. 국민여론은 일본을 불구대천의 원수 보듯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만화/애니메이션은 일제를 수입해오는 우리의 현실같이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다음세대가 즐길 대중문화에 더 이상 ‘국산’의 타이틀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형렬 기자 pak_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