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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하루 끝에 만난 친구, 지하철 - 김승모(그래픽아츠과 2)

등록일 2021년04월14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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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행하는 매주 월요일 대면 수업은 나 같은 집돌이에게 일주일에 한 번 모든 체력을 쏟아붇는 날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의 외출은 내게 짐과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은 가끔 있는 소소한 행복이다. 매주 타는 이 고철 덩어리 지하철은 이전과 다르게 막 잠에서 깨 비몽사몽한 상태로 등교하는 날 위로해주고 하교 후 지친 몸을 이끈 내게 편안한 자리를 맞이해준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만큼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나의 고민과 지침을 끌고 가는 친구가 된다.

이전에는 그 고민과 지침의 시간이 싫어서 최대한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지하철과 달리 막힌 벽과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이 아닌 움직이는 풍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라는 책에서 본 적 있다. “기분과 감각은 별개다. 기분은 눈물이나 신체 따위에 반응을 일으키지만, 감각은 감각이 발생한 부위를 집어낼 수 있다. 기분의 원인은 자신의 안에 있기에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봐도 다른 것을 느낀다.” 현재도 위의 말에 공감하며 하루에 대한 지침은 단지 몸이 힘듦이 아닌 나의 정신적인 문제도 포함됐다.

내가 이런 지하철에 대해 어둡기만 했던 부정적인 감정을 바꾼 일이 있었다. 매번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나를 반겨주는 건 항상 똑같은 고철 덩어리 4호선 하늘색 열차였다. 지나간 하루를 다시 복습하며 내가 보낸 하루를 후회하고 있을 때 기장님의 방송이 들려왔다. “힘들거나 지치고 속상하신 게 있으시다면 이 열차에 모두 다 놓고 내리세요. 제가 다 싣고 가겠습니다.” 짧은 기장님의 방송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하철의 어두운 인식을 바꾸기에는 너무 훌륭한 방송이었다. 물론 그 방송을 모두가 들은 것은 아니다. 몇 명은 무방비 상태였던 나처럼 막혀 있는 지하철 천장을 바라보며 기장님의 말을 다시 새겼지만, 대부분은 핸드폰에 집중해 못 듣는 사람도 많았다. 어쩌면 그냥 평범히 지나치는 지하철처럼 지나가는 일상은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은 타고 내릴 수는 있지만, 승객은 원하는 곳으로 조종할 수 없다. 그저 정해진 노선에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를 정해 내리는 일밖에 없다. 앞으로 쭉 나아가고 본인의 목표와 가까운 곳을 선택하는 일, 그것이 지하철과 일상 아닐까? 언젠가 다시 월요일은 찾아오고 지하철은 앞으로만 가고 나도 앞으로만 전진해야 할 것이다. 이전에는 굳이 지하철을 타고 내려야 하는 귀찮음과 각자의 삶을 사는 듯한 차가운 느낌이 싫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며 지하철은 나에게는 불편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나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는 친구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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