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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재발견 - 방사선과 박훈희 교수

등록일 2014년01월15일 00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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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희 교수(방사선과)
 방학이 되면 학생들에게서 편지가 도착한다. 학교에서 방학 숙제로 교수님께 편지쓰기를 권고하는데 고맙게도 또박또박 손으로 적은 편지에 방학 중에 있었던 일과 학기 중에 교수님과 함께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보내준다. 인터넷과 SNS 등이 활발한 요즈음, 전자통신 기반의 도구가 아닌 편지는 묘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요즘 같은 시대에 모두 시간은 없는데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주고받아야 할 말과 일도 많기 때문에, 편지라는 소통 수단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어지간한 일들은 전화, 문자메시지, SNS로 해결하고, 심지어 오랜 지인들에게 보내는 안부조차 이메일로 해결하기도 한다. 모든 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기에 간편한 도구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에서는 이러한 방법들이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주고받은 이야기들은 가슴 깊숙한 곳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형식적으로 축하 인사나 위로의 말들을 건네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그러한 도구들이 가진 특성이 금세 왔다 금세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앞서 말한 도구들은 현대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유용한 것들이지만, 편지는 말로는 그냥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어 몇 백 배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편지가 우리에게 몇 가지의 혜택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편지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적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적은 글은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고, 글 쓴 사람의 진심을 느끼게 해준다. 아픔을 겪고 있거나 주변 사람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이에게 편지를 건네면, 그것을 받아든 사람이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편지는 창의력과 문장력을 키워준다. 사실 요즘 많은 사람이 문장에 굉장히 약하다. 책을 잘 읽지도 않지만 읽더라도 꼭 필요한 것들만 골라 속독해버린다. 글보다는 말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해 버리기 때문에 실제 글을 쓸 시간도 필요도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전자통신 기반의 도구들이 활성화되기 전만 해도 연애편지부터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새해 인사나 축하의 말 등은 모두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통했기 때문에 항상 펜과 메모지를 지니고 다녔다. 책을 읽을 때에도 좋은 문구들은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편지를 쓸 때 활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문장력도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편지로 내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한 줄의 문장을 쓰는 데도 여러 번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신선하고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 애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창의력도 향상되고, 계속해서 글을 쓰다보면 올바른 문장을 쓰는 것은 물론 문장력이 좋아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편지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준다. 소극적이거나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힘들어하는 게 사실이다. 부모님이나 친구에게도,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속마음을 표현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럴 때 엽서에 짤막하게라도 적은 마음은 받는 이를 감동하게 만든다. 부모님께는 감사를, 친구에게는 우정을, 연인에게는 사랑을 글을 통해 더 깊게 전할 수 있다.

편지는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준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메모하며 기억을 연장시키는 노력을 한다. 순간의 감정은 아름답고 짜릿하지만, 그것을 영원히 기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 편지다. 편지 자체가 곧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받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고, 시간이 많이 흘러도 편지를 볼 때마다 상대방을 기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편지는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고 낭만을 되살려 주기도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나 연인,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는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져 있다. 한 자 한 자 상대에 대한 소중한 마음으로 써 내려가고 읽어 내려가는 편지 속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어찌 보면 삭막한 시절이지만 편지로 그러한 낭만을 새롭게 되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보내 온 편지를 담은 편지함이다. 이 보물을 가끔 들여다보면 다시금 그 친구가 생각나기도 하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하기도 한다. 물론 다시 과거로 돌아가 모든 상황에 편지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함께했던 순간과 생각을 추억하며 깊은 감동에 빠져 들기도 한다.

지금의 다양한 통신 도구들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효율적이면서도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순간만큼은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전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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