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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점 극복기-신승흰 학우(원예디자인과 2)

등록일 2022년06월29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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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학교 실습으로 가지치기하여 가져온 무궁화 가지를 화분에 심었다. 흥밋거리는 금방 바뀌었으니까 이 녀석에게 관심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다. 2018년 8월, 녀석이 꽃을 피웠다. 꽃은 흰색에 쭈글거렸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고, 햇빛을 좀 더 잘 받게끔 화분 위치를 옮겨줬을 뿐이다. 그런데도 녀석은 꽃을 피웠다. 내가 노력으로 결실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녀석을 관찰했다. 일지를 적어 둘걸 그랬다. 이 녀석을 전보다 더 큰 애정으로 돌보기 시작했고 내 키만큼 자라는 상상도 하였다. 그런데 잎과 가지에 진딧물이 많더라. 나중에 ‘진딧물 방제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2018년 9월, 학교를 일주일 다니고 휴학했다. 이유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앓던 불안 증세 때문이다. 교실에 들어가면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나를 해치려 하는 느낌에 감각이 곤두서고 숨이 안 쉬어지며 심장소리가 온 몸을 울렸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감각을 끄는 것’뿐이였다.대학교에 와서는 관심도 없던 전공에 왕복 3시간 거리를 통학하면서 학교를 다니려니 죽을 맛이었다. 매일 핫식스 서너 캔을 마셨지만 그럼에도 수업 중에 잠을 잤다. 2학기 개강 후 버틸 수 있던 건 일주일뿐이었다. 군대까지 남은 시간은 약 일 년, 그 사이에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기로 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책상에 몸을 만다. 병원에 가거나 상담을 받을 용기조차 없었다. 부모님께 설명할 때는 애처럼 울어 대기만 할 뿐이다. 피하면 평생 피하게 될 거라는 부모님의 조언에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분을 느끼면서 고등학교 개근을 했다. 지금도 무엇이 나를 그렇게 괴롭혔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사소했던 것이 점점 커지면서 나를 잡아 먹었다고 느낄 뿐이다.


2018년 10월, 홍대에 레슨을 받으러 간 첫날에 본인 선에서는 가르치기 힘들 거 같다며 거절을 당한 뒤 2~3일은 멍만 때렸다. 하고 싶은 일에 첫 도전이었는데 이렇게 끝나버려서 절망적이었다. 그러다 베란다에 녀석을 보았다. 진딧물이 꽃잎까지 덮여버렸다. 진딧물을 방제한다 하고 까먹었던 것이다.
불현듯, 당장 진딧물을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눈앞에 에프킬라가 보였고, 다른 것들은 신경 안 쓰는 듯이 녀석에게 살충제를 사정없이 뿌렸다. 기분은 꽤 시원했다.

아 내가 무슨 짓을 정신 차린 뒤에는 늦었다. 무궁화는 성한 곳 없이 살충제로 뒤덮였고 살충제액이 점점 끈적하게 달라붙으면서 가지든, 잎이든, 꽃이든 말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결국 도망을 쳤다는 죄책감과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애먼 생명체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수습을 해야 한다. 일단 나무의 가지와 잎을 다 잘라내고 살충제가 묻은 화분에서 꺼내 물에 헹구었다. 그다음 물을 채운 컵에 무궁화를 꽂아 두었다.
 

2018년 11월, 녀석에게 살충제를 뿌린지 3~4주가 지났다. 새로운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살짝 나온 떡잎에 무릎을 꿇고 중얼거렸다. 일주일 뒤에 상토와 화분을 새로 사 와서 분갈이를 했다. 그것도 부족할까 종묘상에서 영양제를 사와서 잎에 뿌려 줬다. 죽이려고 한 건 나인데 이렇게 살리려고 노력하는 게 이중적이다 싶었다.


2019년 4월, 봄이 돌아왔지만 녀석은 생장을 멈추었다. 잎은 나오지만 키가 크지는 않았다. 후유증인가 싶었다. 살충제를 뿌리지 않았으면 최소 한 뼘 이상 자랐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내가 유일하게 이룬 것을 스스로 죽인 것이다.

2019년 6월, 입대까지 두 달 남았다. 군대 가기 전에 이룬 것도, 나아진 것도 없었다. 불안 증세를 가지고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막연한 공포감까지 더해져 우울함이 극에 달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울기만 했다. 울다 지치면 멍 때리고 유튜브를 보다가 하루가 갔다. 엄마가 군대 가면 무궁화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경비 할아버지께 부탁드려서 아파트 화단에 심기로 하였다. 경비 할아버지는 기뻐하시며 화단 볕에 심으셨다. 더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미안함만 가득해서 스스로에게 혐오만 깊어졌다.


2021년 4월, 전역을 했다. 기분이 상쾌했으며 코로나19로 휴가 통제가 되면서 평생 위병소 밖으로 못 나갈 거 같았는데 전역 날 당당히 걸어 나오면서 기분이 묘했다. 군대에서 지내면서 얻은 것도 많다. 후임 시절 선임에게 잦은 실수와 어리숙함을 호되게 여러 번 혼난 뒤로 병장이 되어서도 근무 가기 전 수첩에 준비물과 근무수칙을 적고 들어갔다. 그래서 후임 중에 병장임에도 그런 모습이 멋있다고 성실함이 존경스럽다고 하는 사람이있더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경험들로 불안 증세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를 즐기다가 녀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화단을 찾아갔는데 깜짝 놀랐다. 녀석은 내 가슴 높이까지 성장했다. 잎, 가지도 성하게 푸르다. 꽃은 대여섯 송이가 활짝 폈더라. 하단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존 생장점은 흉터처럼 검게 막혔고 그 옆으로 새로운 가지가 쑥쑥 성장해낸 것이다. 녀석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을 몇 번이고 내뱉었다. 정말 기적 같았다.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죽거나 성장이 멈출 줄 알았다. 그러나 녀석은 내가 떠난 동안 다친 부분을 딛고 기존의 자신보다 몇 배의 성장을 해낸 것이다.


2022년 6월, 복학한 지 두 학기가 지났다. 학교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도 컸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무난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더이상 수업이 무섭지 않고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전공에도 관심이 생겨 특정 분야에 진로를 설정하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녀석은 상상했던 거 처럼 내 키만큼 자랐고 흉터도 두꺼워진 목질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인생에는 3번의 고비가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시련의 기간이 세 번씩은 찾아온다는 의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기간을 과거의 나를 깨고 새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말하더라.

아무리 현재의 내가 괴롭고 힘들다고 해도 그 끝은 지당하게도 있으며, 미래의 내가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화단에서 누구보다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는 녀석처럼, 과거에 학교를 도망쳤었던 나처럼 말이다. 현재 본인의 삶이 어렵다고 해서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삶을 포기하기에는 이 세상에는 기쁘고 아름답고 따뜻한 것이 넘쳐난다.
아무도 당신의 성장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면 내가 보증하겠다.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 당신의 성장을 응원한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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